트럼프 지시 ‘주독미군 감축’ 공화당도 반대… “러 입지만 강화”

입력 2020-06-10 17:24 수정 2020-06-10 18:15
독일 람슈타인에 있는 미국 공군기지에서 9일(현지시간) 군용기 1대가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약 3만5000명인 독일 주둔 미군을 9500명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독일 주둔 미군 감축에 반대하는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2017년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해외 주둔 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 22명은 9일(현지시간) 서한에서 주독미군 감축 보도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그러한 조치는 국가 안보에 큰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서한에는 하원 군사위 공화당 의원 26명 중 모 브룩스·스콧 데스잘레이스·랄프 아브라함·맷 가이츠 4명을 뺀 22명이 서명했다. 네오콘의 상징인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장녀 리즈 체니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상원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화당의 제임스 인호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주독 미군 감축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믿을 수 없는 매우 나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9월까지 주독미군 9500명 감축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이번 조치가 지난해 9월부터 논의됐고,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철수 명령 문서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주독미군 감축 보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부인하지도 않고 있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8일 “대통령은 해외 주둔 미군의 태세를 계속해서 ‘재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 국방부는 아직 주독미군 감축 지시를 받지 못한 상태라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통신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감축 결정은 국가안보 고위 당국자들의 허를 찔렀다며 백악관·국무부·국방부 당국자가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사법당국 관계자들과의 라운드테이블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유럽·아프리카사령부가 있는 독일에는 현재 약 3만5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9500명을 줄여 상주병력이 2만5000명을 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주독미군은 해외 파병 미군 중 최대 규모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내 미군 활동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주독미군 감축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한 유럽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주둔 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나토도 타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각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방위비 지출이라는 목표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나토 회원국 중 경제규모가 가장 큰 독일에 대해선 훨씬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독일의 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중은 1.36%로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나토에 대한 미국의 헌신이 줄어든다는 신호는 러시아의 침략과 기회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75년의 투자와 희생으로 나토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 됐다”며 “우리는 나토를 개선하고 그 비용을 더욱 공평하게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말 시리아 철군을 주장했다가 공화당 반발에 밀려 미뤘던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시리아 철군을 다시 꺼내들었는데, 터키군이 시리아 쿠르드 지역을 침공하고 국제사회 비판이 고조되자 사실상 철회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시리아 철군, 지난 3월 대 아프가니스탄 10억달러 자금 지원 삭감을 발표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주독미군 감축도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