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보수’ 김종인 면전에 박진 “보수 안 없어져”

입력 2020-06-10 17:07 수정 2020-06-10 17:10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중진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내 소통 폭을 넓히고 있다. 김 위원장을 독단적이라고 비판하는 당내 우려를 의식한 행보다.

김 위원장은 10일 오전 국회에서 처음으로 중진의원들과의 회의를 열었다. 그는 비상대책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당이 매우 어려운 실정에 있기 때문에 의회경험들 많이 갖고 계시는 중진의원님들께서 당의 활로를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하는 의견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진의원들께서 의견을 많이 피력해주시면 고맙겠다”고 요청했다.

중진의원들은 덕담을 건네면서도 뼈 있는 말들을 빼놓지 않았다. 특히 4선의 박진 의원은 “보수의 가치와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그러나 이것이 시대의 요구에 변화하지 못 하면 시대착오적인 수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과제는 전략적으로 보수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수의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을 유지해가면서 계속 변화하고 진보하는 그런 진취적인 정치 세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보수라는 말도 쓰지 말라면서 탈이념 실용주의 정당으로의 정책 기조를 밝힌 데 대한 문제 제기였다.
박진 미래통합당 의원(오른쪽)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수 의원은 이슈 선점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미래 이슈를 미리 선점하신 것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당이 실질적으로 (미래 이슈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느냐고 하면 답변이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이슈 선정과 거기에 따른 당의 기술적인 검토, 정책을 만드는 것이 유기적인 연결이 되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홍문표 의원은 “김 위원장께서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 지혜와 지도력이 있으시니 의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도 당의 구체적인 노선을 알 수 없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비대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이어 김 위원장은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초선 의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 당이 잘못되면 민주정치의 균형이 무너진다”면서 “격의 없이 의견을 내 달라”고 당부했다. 당 관계자는 “초선의원들이 총선을 치른 소감 등 다양한 얘기를 했다”며 “김 위원장과 원내외 구성원들 간 만남은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행사에 홍준표 무소속 의원,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원희룡 제주지사, 장제원 통합당 의원, 이종배 통합당 정책위의장(앞줄 왼쪽부터) 등이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다만 ‘김종인 비대위’가 당내 반발을 완전히 잠재기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장제원 의원은 이날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마라’는 어느 이방인이 내뱉는 조롱 섞인 짜증이 아니라 뿌리있는 보수 적통 정치인의 자신감으로 ‘보수의 이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유전자’라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힘주어 말했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전날 자신이 주도하는 포럼에서 강연한 원 지사를 치켜세우는 한편 김 위원장을 ‘어느 이방인’이라고 부르며 깎아내린 것이다.

‘차르’(러시아 절대군주)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김 위원장이 당 안팎의 견제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도 관심사다. 김 위원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이 우선 당내 의견을 듣는 데 집중하고는 있지만 정치 경험이 풍부한 그가 참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