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학교 급식이 장기간 중단되면서 10여년 동안 유지돼 왔던 ‘친환경 학교급식 시스템’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와 이를 세척·절단하는 전처리업체 등 학교급식 관련 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일보가 10일 방문한 경기도 남부 지역의 한 친환경농가 대형창고엔 급식으로 공급됐어야 할 고구마 50t이 썩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3층 높이로 쌓인 박스 안에는 곰팡이가 핀 채 말라 비틀어진 고구마가 가득했다.
농민 이영기(61·가명)씨는 “원래 한 달에 20t씩 출하돼 창고가 텅 비었어야 하지만 급식이 중단되면서 판로를 찾지 못했다”며 “10년 동안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해왔는데 아예 밭을 갈아엎은 농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는 “고구마만 2억원어치고 폐기비용까지 합하면 손해는 더 누적된다”며 “올해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지 속이 타들어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교급식에 납품하는 친환경농가들은 ‘계약재배’를 한다. 1년치 물량을 계약하면 각 지역 친환경농가출하회가 품목별로 농가에 물량을 분배해 계획생산하는 식이다. 농가는 판매량을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고 학교는 안정적으로 친환경농산물을 공급 받는다. 하지만 급식이 장기간 중단되며 계약재배의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지원책이 없진 않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등은 3~5월 미사용 학교급식경비 1700억원을 재원으로 식재료 꾸러미를 학생 가정에 지원하는 사업을 지난달부터 시작했다. 기존의 급식 관련 업체들을 활용해 친환경급식 체계를 유지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도교육청이 꾸러미 구성 품목을 각 학교운영위원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 정작 꾸러미에 친환경농산물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의 한 농업인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친환경농산물이 포함된 꾸러미는 전체에 1만여개뿐이다. 경기도 전체 학생 169만명에게 지급되는 꾸러미 중 0.5% 수준이다. 이 관계자는 “학교는 방역과 교육에 바빠 취급하기 쉬운 가공식품 위주로 꾸러미가 채워지고 있고 꾸러미 자체가 유통기업들의 로비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가와 전처리업체, 지역 물류업체들을 그대로 활용하자는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비판했다.
전처리업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매달 5억원 규모의 식자재를 납품해왔던 한 업체 대표는 “학교급식 물량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했는데 3개월 동안 매출이 아예 없었다”며 “설비는 놀고 보관하던 농산물은 계속 재고로 쌓이는 상황이라 직원 고용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교육청이 나서서 친환경농산물을 꾸러미 필수 품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도의 한 출하회 사무국장은 “농가가 계약을 위반한 것도 아닌데 급식 중단으로 인한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위기를 외면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최종소비자인 교육청이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청 관계자는 “농가뿐만 아니라 축산물, 해산물, 가공식품 등 다양한 업체의 피해를 골고루 최소화하자는 게 사업 방침이었다”며 “다만 친환경농가의 어려움을 반영해 농산물을 일정 부분 포함해달라고 학교에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