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자들 ‘홍콩보안법’에 좌불안석 “홍콩서 돈 빼야 하나”

입력 2020-06-10 14:56
지난달 24일 시위대를 검거하는 홍콩 경찰.AP연합뉴스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둘러싸고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홍콩에 투자해온 중국 본토 부자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며 자산 이전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정국 정부는 본토 주민이 해외 주식이나 부동산, 금융상품에 직접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강력한 자본 통제를 해왔지만, 많은 중국인들은 홍콩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활용해왔다.

중국인들이 홍콩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보험증서를 구매하거나 부동산을 거래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다수는 홍콩을 통해 해외시장에 투자해왔다.

홍콩은 자본 유출입에 대한 제한이나 인터넷 검열이 없고 사법부에 의한 법치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본토 부자들의 투자처로 인기를 끌었다.

홍콩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신규 보험증서의 25%는 중국 본토 주민이 샀고, 본토 주민들은 2018년 홍콩 주식시장에서 영국인을 넘어 비거주자 가운데 최대 투자자가 됐다.

지난해 말 기준 홍콩 증시에 상장된 본토 기업은 1241개로 전체의 50.7%를 차지했다. 2016~17학년도 홍콩 대학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도 2만6000명으로 비거주자 가운데 가장 비중이 컸다.

홍콩 섬의 고층 빌딩 숲.

하지만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정치적 자유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데다, 미국 정부가 관세와 비자 등에서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절차를 검토하자 본토 투자자들이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광둥성의 투자자인 류안량 씨는 “과거에는 본토의 시장과 정책이 어떻게 바뀌든 우리의 자산을 홍콩 부동산에 투자하고 홍콩 은행에 예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홍콩이 특별지위를 상실할 경우 그 자산이 얼마나 오랫동안 안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당 부분의 홍콩달러를 조속히 미국 달러로 환전하고, 그 돈을 미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식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부는 홍콩 부동산 매각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둥성의 한 경제전문가는 “홍콩이 자유로운 자본 이동과 사법부의 독립에 도전을 받게되면서 본토인들은 더 이상 홍콩이 부의 피난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본토인들은 겉으로 홍콩 보안법을 강력히 지지하겠지만, 동시에 재산과 가족이 안전한 곳으로 떠나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중문대 사이먼 선 교수는 “향후 미·중이 경제적으로 탈동조화하고, 중국이 지금처럼 홍콩을 관리한다면 홍콩의 기존 기능은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며 “홍콩이 향후 10년 동안에도 미·중의 완충지대 역할을 할지, 아니면 싱가포르나 대만이 이를 대신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장성 닝보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켄트 차이 씨는 “결국 우리 같은 외국 무역업체들에게 글로벌 무역과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여전히 홍콩”이라며 “홍콩 은행 계좌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