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재개되는 올 시즌 K리그2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혼돈’이다. 1부가 더 익숙한 구단들이 승격을 목표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지만, 5라운드까지 끝난 현재 선두는 인구 80만 중소도시 경기도 부천을 연고로 한 시민구단 부천 FC 1995다.
부천은 숙적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4라운드 경기에서 석패를 당했다. 연고이전의 역사 때문에 팬들의 기대를 많이 받았던 경기였다. 중요한 경기 패배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법도 했지만 부천은 이어진 5라운드에서 올 시즌 최다득점팀 수원 FC를 상대로 다시 승리를 거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민일보는 9일 부천의 홈구장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부천 선수들과 만났다.
“K리그2 최고 서포터…다른 팀보다 두 배는 힘 받아”
부천에게 올해는 의미가 깊다. 팀의 서포터즈인 헤르메스가 설립 25주년을 맞아서다. 직접 팬들이 구단을 설립한 역사 덕에 헤르메스는 곧 구단의 정체성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창단 이전인 헤르메스의 설립 연도가 구단 공식 명칭에 들어가 있을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올 시즌 선수들은 팬들의 응원을 직접 듣지 못했다.
주장 김영남은 “K리그2에서는 FC 안양과 부천 서포터가 가장 인원도 많고 열정적”이라면서 “아무래도 열정적인 팬들 덕에 평소에도 많은 힘을 얻는다. 다른 구단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힘을 받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입대 직전 경기에서 받았던 응원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고 떡과 주스를 팬들에게 하나씩 사비로 나눠드렸던 적이 있다. 좋았던 기억”이라고 추억했다.
올 시즌 새로 합류한 수비수 김영찬은 “다른 구단에서 부천을 상대할 때면 항상 부천 팬들이 무서웠다”며 “웬만하면 지칠 만도 한데 끝까지 지치지 않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편이 힘을 많이 받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저 사람들이 이제 든든한 내편이 되겠다 싶었는데 아직 경기장에서 그렇게 만나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영찬은 안양과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과 2호 골을 연달아 터뜨리면서 엠블럼에 ‘키스 세리머니’를 해 팬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이적한 뒤에 아직 팬들과 직접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접 뵙고 싶다”면서 “다음에 골을 넣으면 엠블럼에 뽀뽀를 두 번 이상 하겠다”라며 웃었다.
초반에만 센 부천? 이번엔 다르다
부천은 예전에도 초반에 기세를 올렸던 경험이 있다. 가장 최근인 2018년에는 개막 이래 5연승을 질주하며 선두로 올라섰지만 이어지는 경기에서 잦은 패배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2016년에도 초반 10경기에서 5승 4무 1패를 거둬 기세가 좋았지만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시즌을 4위로 마무리했다.
데뷔 이래 부천에서만 줄곧 뛴 미드필더 이정찬은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승하다가 한 번 지면 다시 이기는 게 쉽지 않다”면서 “이번에는 첫 패를 기록한 뒤 바로 승리를 거둬서 자신감이 있다. 1위도 탈환했고 자신감도 얻은 승리였다”라고 말했다. 이정찬은 “무엇보다 빨리 관중들이 경기장에 들어와서 그 앞에서 승리를 하고 싶다”며 “경기가 끝난 뒤 팬들과 함께 부르는 ‘승리의 랄랄라’가 그립다”고 덧붙였다.
주장 김영남은 올 시즌 선수단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연승했던 시절에는 선수단 중 5~6명이 끈끈하게 잘 어울려 분위기가 그들 중심으로 잘 뭉쳐졌던 감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선수끼리 서먹한 사람이 없이 전체적으로 융합이 잘되는 분위기”라면서 “선배와 후배들이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팠던 제주전, 다음번엔 팬들 앞에서
지난달 27일 홈에서 열린 제주전은 구단 역사에서 중요한 경기였다. 선수들도 이를 의식한 듯 경기에 앞서 공개된 영상에서 “죽을 각오로 뛰겠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상대의 골은 그래서 더 아쉬웠다.
김영찬은 “제주전에서 진 날 팬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에 잠을 잘 못잤다”면서 “프로 생활을 하면서 경기 뒤 그처럼 이유 모를 억울한 감정이 든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주장 김영남은 “부담과 설렘이 함께 있었던 경기”라면서 “전반에 비해 후반에는 준비한 것에 비해 부족한 경기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송선호 감독의 배려 덕이었다. 김영남은 “경기 뒤 분위기가 쳐질 수도 있었는데 감독님과 코칭 스태프들이 분위기를 잘 잡아줬다”면서 “경기 다음날 평소 같으면 하지 않거나 짧게 10분만 하고 끝날 5대2 볼돌리기 등 흥미 위주 훈련을 길게 했다”고 기억했다. 이정찬은 “경기 뒤에도 감독님이 선수들을 칭찬하면서 분위기 쳐질 필요 없다고 계속 격려해주셨다”면서 “다음 경기를 이기는 데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부천은 다음달 제주 원정에 이어 9월 또 한번 제주와 홈경기를 치른다. 이정찬은 “다음 제주 홈경기에서는 팬들이 보는 앞에서 이기고 싶다”면서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뛰는 제주전을 경험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훨씬 동기부여도 될 것 같고 가슴이 뛰고 설렐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부천=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