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등 민주화 운동가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한명 한명 직접 호명했다. 정부가 6·10 항쟁 기념식에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단체로 훈포장을 수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남영동 소재 옛 ‘대공분실’ 앞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오기까지, 많은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며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께 훈포장을 수여한다. 한분 한분, 훈포장 하나로 결코 다 말할 수 없는, 훌륭한 분들”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부터 차례차례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전태일 열사를 가슴에 담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평생을 다하신 고 이소선 여사님”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고 박형규 목사님”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님” “시대의 양심 고 지학순 주교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신 고 박정기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아직도 민주주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님” 등 이름과 함께 공적을 압축해 설명했다. 이밖에 조철현(조비오 신부), 고 성유보 기자, 고 김진균 교수, 고 김찬국 상지대 총장, 고 권종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고 황인철 변호사 등이 함께 모란장을 받았다. 또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조지 오글 목사, 고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국민 포장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실로 이름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이며, 엄혹했던 독재 시대 국민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들”이라며 “저는 거리와 광장에서 이분들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성숙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정비되어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을 뽑고,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많은 곳에서 행사하지만,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른다. 소수여도 존중받아야 하고, 소외된 곳을 끊임없이 돌아볼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한다”며 “우리는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웃이 함께 잘 살아야 내 가게도 잘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속 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느낄 때일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더 많이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평화와 민주주의, 번영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민주주의로 평화를 이뤄야 한다”며 “그렇게 이룬 평화만이 오래도록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악화한 남북 관계를 둘러싼 소회를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제30주년 기념식 이후 3년 만에 다시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찾았다. 이날 기념식의 슬로건은 ‘꽃이 피었다’였다.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맥을 이어 대통령 직선제를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승리의 역사를 꽃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6월 민주항쟁 당시 시민들이 경찰에게 꽃을 달아주며 폭력에 저항했던 의미를 살려 행사장소인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 등을 꽃으로 표현했다.
행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참석자 수를 70여명으로 줄여 진행됐다. 기념식엔 민주화운동 단체 대표, 민주주의 발전 유공자 유족, 4부 요인, 주요 정당 대표, 경찰청장 등이 참석했다. 현직 경찰청장이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과거 경찰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를 반성한다는 취지였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