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를 공언한 북한이 남북 간 모든 공식 연락채널을 9일 끊어버렸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 이후 긴장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남북 정상부터 실무 차원까지 촘촘히 구축했던 소통 채널들을 하루 만에 일제히 닫아버린 것이다. 북한이 연락채널 단절은 첫 단계 행동이라고 밝힌 만큼 앞으로 개성공단 완전철거, 연락사무소 폐쇄, 군사합의 파기, 나아가 무력도발까지 대남 압박수위를 노골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부위원장은 대남사업부서 사업총화 회의에서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 제1부부장과 김 부위원장은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적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북한이 남측을 겨냥해 ‘대적사업’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노골적으로 적대시정책을 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날 낮 12시를 기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핫라인’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과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통신시험연락선(기계실 시험통신) 등을 모두 끊었다. 북한은 오전·오후 연락사무소 및 군통신선 간 업무 통화를 수신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은 국정원과 노동당 통일전선부 간 핫라인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여지를 남겨뒀다.
연락채널 단절은 북한이 자주 사용한 대남압박수단이다. 이번이 7번째다. 그동안 북한은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연락채널을 닫고 여는 행위를 반복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해왔다. 2016년 2월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운영을 중단하자, 북한은 곧바로 판문점 채널과 군 통신선을 끊으며 맞섰다. 2018년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천명하고 나서야 연락채널이 복구됐다. 북한은 1976년 8월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후속 조치로 판문점 내 남북 간 직통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기도 했다.
북한은 연락채널 단절을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니는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추가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다음 수순으로 저강도 군사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의 경우 이미 운영이 중단된 탓에 이를 폐지·철폐해도 우리 정부가 받을 충격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해안포 개방 또는 북방한계선(NLL) 훈련 재개 등 9·19 군사합의 파기에 따른 저강도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미국 등을 자극할 수 있는 탓에 고강도 군사도발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라며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면서 충격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