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승자독식’, 독일 ‘원로평의회 합의’…한국은 규정이 없다

입력 2020-06-09 18:00
9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왼쪽) 원내대표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각각 원내대책회의와 6·25 전쟁 70주년 회고와 반성 정책 세미나에서 피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에서도 여야 대치로 원 구성이 법정시한 내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이나 독일 의회는 구체적인 규정을 토대로 상임위원장을 배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지각 개원’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행을 깨기 위해 상임위원장 배분 기준이나 방식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국회법에 원 구성 관련 내용은 시한(최초 집회일과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출에 대한 시한) 정도만 규정돼 있다. 원 구성 협상의 핵심인 상임위원장 배분에 관한 기준이나 원칙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상임위원장 배분은 전적으로 원내 교섭단체 간 협상에 의존해 왔다. 정치 상황과 의석 수에 좌우되는 교섭단체 간 협상은 매번 차질을 빚었고 지각 개원은 일상화됐다. 13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원 구성에 평균 41.4일이 소요됐다. 해외 주요국 의회처럼 원 구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제인 미국은 하원 의사규칙에 ‘상임위원장은 다수당 의원총회에서 제출한 명단에서 1인을 본회의에서 선출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규칙에 따라 미 하원은 선거가 끝난 이후 다수당 의총에서 상임위원장을 결정한다.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제다. 의사규칙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여야 간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

내각제인 독일은 의회 운영의 중요 사항들을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전통이 확고하다. 독일 하원 의사규칙에는 ‘상임위원장은 원로평의회에서 이뤄진 합의에 따라 선출된다’고 규정돼 있다. 원로평의회는 의회 의장, 부의장, 교섭단체에서 지명한 의원 등 20여명으로 구성된다. 의석 수를 고려해 원로평의회에서 교섭단체별 상임위원장 배분을 결정한다. 독일도 한국처럼 협상에 의존하는 방식이지만, 원로평의회라는 공식 협의체를 통해 원 구성이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협상이 수월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도 의회 의사규칙에 원내 정당 의석 비율을 고려한 협상을 통해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도록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원내총괄수석부대표(오른쪽부터), 김태년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가 8일 국회 의장실에서 상임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매번 원 구성 협상 표류로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해외 주요국들처럼 원 구성 관련 규정을 명확히 하면 불필요한 진통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국회법을 고쳐서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방식이나 방법 등을 명시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지금 같이 과반수일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그냥 의석수에 비례해서 나눌 건지, 그냥 투표로 결정을 할 것인지, 여소야대일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아예 국회법으로 명시한다면 불필요한 싸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수결보다는 합의와 타협이 거대한 흐름이었다”며 “여야가 원 구성 관련 개선안을 마련하려면 일단 진행 중인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는 여당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의 양보가 전제된다면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부터라도 상임위원장 배분 등 원 구성과 관련한 개선안을 여야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헌 김이현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