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 놓인 ‘한반도 데탕트’…북, 남측을 ‘적’으로 몰았다

입력 2020-06-09 17:42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은 “배신의 죄값” “대적사업” 운운하면서 우리 측을 ‘적(敵)’으로 간주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히며 남북 관계의 전면 단절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년 반 남짓 이어지던 한반도 데탕트 국면이 중대 기로를 맞게 됐다. 북한은 우리 측과의 접촉 면을 모두 없애겠다며 각종 추가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 남북관계는 당분간 악화일로로 치달을 전망이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파탄 직전까지 몰린 책임을 전적으로 우리 측에 돌리고 있다. 탈북민 단체가 이른바 ‘최고존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모욕하는 대북전단을 살포하는데도 우리 정부는 이를 방치했기 때문에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없으며 적으로서 대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9일 “남조선 당국의 무맥한 처사와 묵인 하에 역스러운(역겨운) 쓰레기들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하면서 감히 최고존엄을 건드리며 전체 우리 인민의 신성한 정신적 핵을 우롱했으며 결국 전체 우리 인민들을 적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최고존엄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목숨을 내대고 사수할 것”이라며 “지켜보면 볼수록 환멸만 자아내는 남조선 당국과 더 이상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문재인정부에 쌓아왔던 불만과 불신을 이번 기회에 터뜨렸다는 시각도 있다. 남북관계의 판을 크게 흔들어 우리 정부의 태도를 바꿔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공조에 발맞추려 남북 경제협력에 나서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북·미 선순환론을 ‘달나라 타령’이라고 지칭하며 우리 측이 ‘친미 사대 굴종’을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을 재연하고 있다”며 “북한은 현재 남북관계가 매우 엄중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이런 인식을 행동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고강도 압박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특정 시점에 대남 강공 드라이브를 접고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은 과거 경색 국면에서 우리 측과 대화하고 싶을 때 군사적 도발 등으로 남북 간 긴장을 크게 끌어올리는 수법을 구사해왔다. 상대방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 테이블을 열려는 의도에서다. 북한은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 내 목함지뢰 매설과 서부전선 포격 도발을 잇달아 벌여 군사적 긴장을 최고도로 끌어올린 직후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라고 밝혔는데 과거에는 이처럼 명확한 요구조건이 제시됐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우리 정부에게 더욱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요구한 셈이다. 오히려 현재 국면이 위기이자 기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