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3사가 카타르의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프로젝트를 따낸 지 일주일이 지났다. 현지 국영 석유사인 카타르 페트롤리엄(QP)과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3사가 맺은 계약으로 LNG선 100척 이상, 23조6000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이 계약을 두고 ‘카타르 잭팟’ ‘수주 호황’ 등 각종 수식어가 나붙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4일 “우리 조선산업 기술력의 승리”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계약은 LNG선을 정식으로 발주하기 전 선박 건조에 필요한 도크(공간)를 확보하는 슬롯 약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60%가량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져도 성공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이유다. 가뭄의 단비 같은 수주 낭보가 조선소만 배 불릴 거란 지적도 팽배하다. 노동자도 함께 먹고 살 ‘조선 호황’은 아직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것이다. 왜 이런 냉소적인 평가가 나오는 걸까.
국민일보는 9일 전화·이메일을 통해 업계 관계자 2명과 인터뷰를 가졌다. A씨는 14년차 조선 빅3 생산직 노동자이고, B씨는 LNG선과 관련된 기자재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침체된 한국 조선업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이들의 우려와 바람을 날 것 그대로 전한다. 다음은 이들 2명과의 일문일답이다.
-조선업 종사자로서 이번 계약을 어떻게 바라보나
A씨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노동자 입장에서 그저 평소보다 일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일 것이다. 2018∼2019년 조선 3사 모두 수주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애초 내년 만들기로 계약한 배가 16척이다. 1년에 보통 30척을 만드는데 2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이번 계약으로 30척 정도 물량을 따와 3년에 걸쳐 만든다고 가정하면 ‘기존 일감보다는 좀 늘겠네’라는 생각이다.”
B씨 “100척 이상에 23조 원 규모의 대형수주 계약이라고 하지만 실제 발주 계약이 아닌 슬롯 약정이다. 향후 그대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아닐 수도 있기에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게 아닐까. 그래도 신규 수주가 없는 상황에서 실제 계약이 맺어지면 일감 걱정은 줄어들 것이다.”
-슬롯은 ‘우리가 이만큼 배를 만들고 싶으니 조선소 도크를 비워놓으라”는 예약의 개념이다. 100척 이상의 약정이라지만, 실제로는 60∼70척 정도 가능할 거란 예상이 많다.
B씨 “카타르는 2004년에도 빅3와 90척 이상의 슬롯 예약 계약을 체결했는데 실제로는 대우조선해양 26척, 삼성중공업 19척, 현대중공업 8척 등 53척을 발주했다. 카타르에서 발주하는 LNG선이라도 전체를 카타르에서 LNG를 채굴해 수출하는 데 사용하는 목적이 아니라 다른 곳에 빌려주는 개념이다. 요즘 LNG 시황을 보면 용선이 잘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용선주가 없는데 배만 지어놓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을 거다. 업계에서는 100척 슬롯 계약에서 60% 정도 실제 발주가 이뤄지면 성공적이라고 판단한다.”
-조선업이 정말 어렵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가 어느 정도인가
A씨 “2008~2012년은 조선 호황기였다. 잔업·특근 등 일도 많이 했지만 용접·도장하는 물량팀 노동자가 한 달에 500만원씩 받아 갔다. 그때만 해도 ‘조선소는 돈벌이가 된다’고 입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거제, 울산으로 많이 몰려들었다. 지금은 임금이 너무 떨어졌다. 오죽했으면 거제에서 ‘조선소 들어갈 바에야 편의점 알바 2개 뛰는 게 더 낫다’는 말까지 돌까. 지금 거제가 들썩거린다는 뉴스는 죄다 가짜다.”
B씨 “물량이 많을 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카타르에서 수주한다고 해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뻔한 적자 수주에 조선소 하청업체들끼리 경쟁 입찰을 붙여서 단가를 쥐어짤 텐데 돈은 누가 벌까? 조선소 직원일까? 아니다, 조선소만 돈을 버는 것이다.”
-조선 3사는 이번 수주를 계기로 조선 호황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A씨 “호황기 때 조선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는 건조하는 배의 종류가 참 다양했다. 지금은 만들지 않는 자동차운반선부터 초대형 벌크선, 컨테이너선, LNG선 등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선종이 단일화돼 버렸다. 초대형유조선이나 LNG선뿐이다. 선종 다변화 없이는 절대 조선소가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조선소가 빅3만 있는가. 경남 고성, 통영 일대에 즐비하던 중소형 조선소들이 쫄딱 망했다. 다 같이 먹고 살아야 호황 아닌가.”
B씨 “이번 수주로 전체적인 호황이 올까. LNG선을 건조하는 빅3와 LNG선 관련 기자재 업체에만 들어맞는 얘기일 것이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는 것이다. 당장은 일거리가 생기니까 호황일 수 있겠다. 또 빅3사가 호황기가 올 거라고 보고 있다지만, 조선 경기에는 사이클이 있다. 5∼6년 주기로 오름세, 내림세가 반복된다. 지금을 오름세로 보면 오는 2027년 카타르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에는 신규로 따낼 수주 물량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수주로 전체 조선업이 조금이나마 숨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씨 “조선업 전체의 호황을 이어 가려면 고부가 가치 선박인 LNG선 수주도 중요하겠지만, 이미 중국 시장에 뺏겨버린 일반 상선 물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LNG선 건조 능력과 경험이 한참 떨어지지만, 향후에도 그럴까. 중국의 기술력이 올라왔을 때 우리가 계속 LNG선 관련 조선 산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조선업 종사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A씨 “젊은 사람을 좀 키웠으면 좋겠다. 지금 조선소 사람들을 보면 90%가 생산직이고, 나머지 10%는 사무직이다. 그러다 보니 20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30대 후반인 내가 아직도 막내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0년 뒤에는 우리나라 조선소에 일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
B씨 “대기업에 의한, 대기업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일반 중소기업도 상생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 조선 3사는 서로 출혈 경쟁을 하든 뭘 하든 어떻게든 수주를 해서 물량을 채울 것이다. 기자재 업체들에는 선박 건조 가격이 낮아졌으니 단가를 내려 일감을 가져가라고 할 게 뻔하다. 이게 누구 좋은 일 시키는 걸까? 모두가 윈윈하는 구조가 됐으면 좋겠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