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엄마 국적 없어도 출생신고 받아줘야”… ‘출생등록될 권리’ 인정

입력 2020-06-09 17:41

여권갱신 불허 등으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외국인 생모의 자녀에게도 ‘출생등록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최초로 인정한 결정이다. 미혼부가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도입된 ‘사랑이법’의 적극적 해석 기준을 제시한 판단이기도 하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A씨가 사실혼 관계이던 중국인 여성 B씨 사이에 태어난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를 허가해 달라며 낸 신청 사건에서 이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 대해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아동으로부터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며 “이는 헌법상 보장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3년 6월 귀화한 A씨는 중국인 여성 B씨와 사실혼 관계로 지냈다. 그러던 중 2018년 9월 딸을 얻게 됐다. A씨는 곧바로 딸에 대한 출생신고를 위해 관할 주민센터를 방문했으나 거부당했다. B씨가 2009년부터 중국 당국으로부터 여권갱신이 불허됐고, 일본 정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로 한국에 들어와 혼인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이른바 ‘사랑이법’으로 불리는 가족관계등록법 57조에 따라 법원에 출생신고를 위한 확인을 신청했다. 해당 법령은 모친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 부친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1심은 A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A씨가 친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라고 주장하며 신청한 항고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재판부는 어머니가 외국인이지만 출생증명서에 성명, 출생연월일, 국적이 기재돼 있고 그 내용이 출생아의 모(母)란의 기재내용과 일치하는 점 등을 들어 “법 조항 상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A씨는 대법원에 재항고를 냈다.

대법원은 “유전자 검사 등에 의하면 사건 본인은 신청인의 친딸임을 인정할 수 있고, 모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여권의 효력을 정지 당하는 바람에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지 못했다”며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에 포함된다”고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 의해 미혼부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보다 간소하게 혼인 외 자녀에 대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