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6억 빈곤층’ 발언에… 시진핑, 오지 찾아 ‘빈곤 퇴치’ 부각

입력 2020-06-09 17:33 수정 2020-06-09 18:31
닝샤후이족 자치구를 찾아 빈곤 퇴치 현황을 점검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신화망 캡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양회(兩會) 이후 첫 지방 시찰로 오지 마을을 방문해 ‘빈곤 퇴치’ 성과를 부각시켰다.

권력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가 최근 양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한화 17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한 뒤여서 주목된다.

시 주석은 올해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을 강조하고 있지만, 리 총리가 이를 비판한 셈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이번 지방 시찰은 리 총리의 발언을 일축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9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닝샤후이족 자치구의 우충시 훙더촌 등 시골 지역을 직접 방문해 빈곤 구제 현황을 살펴보고 황허 유역 생태 보호와 민족 단결 추진 상황도 점검했다.

시 주석의 이번 시찰은 지난 양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사실상의 승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리 총리의 발언으로 빈곤 문제가 다시 부각된 상황에서 이뤄졌다.

닝샤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수 민족 주거지이자 빈곤 지역이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훙더촌은 최저생활보장제도 적용 및 빈곤 탈피를 위한 지원이 필요한 빈곤촌으로 지정됐다. 당시 훙더촌의 1699가구 7013명 가운데 빈곤층은 1036가구, 4497명이었으나 그동안 빈곤 퇴치 운동으로 1016가구, 4447명이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다.

현재 훙더춘의 빈곤 발생률은 0.78%로 이미 빈곤촌에서 탈피했으며, 지난해 농민들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8435위안(143만원)이라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시 주석이 양회 후 첫 시찰지로 빈곤 지역을 택한 것은 올해 샤오캉 사회 건설 목표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과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2020년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샤오캉 사회 건설은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신화연합뉴스

게다가 리 총리가 양회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고, 1000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밝혀 시 주석의 체면이 구겨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으로 시 주석의 샤오캉 사회 건설 약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 리 총리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지난 1일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에 “우리는 이미 샤오캉 사회 건설 목표를 기본적으로 실현했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리 총리의 발언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치우스는 “전면적인 빈곤 탈피와 샤오캉 사회 건설은 평균주의가 아닌, 국가 전체의 목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리커창 총리가 불을 지핀 ‘노점상 경제’에 긴급 제동이 걸리는 것도 리 총리가 시 주석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리 총리는 지난달 28일 전인대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중국 서부 지역 한 도시의 노점상 경제를 언급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10만 명의 일자리를 해결했다”고 극찬했다.

지난 1일에는 산둥성 옌타이시 주택가의 노점상을 찾아가 “노점 경제는 중요한 일자리 근원으로서 중국 경제의 생기”라고 강조했다.

노점상은 쓰촨성 청두를 필두로 충칭, 상하이, 우한, 칭다오 뿐아니라 수도 베이징까지 전국 대도시에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지난 4일 주요 관영 매체에 ‘노점상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중문판이 보도했다.

노점상 경제의 부상을 다루던 중국 관영 매체들은 관련 보도를 중단하고 기존 기사도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영 CCTV는 7일 논평을 통해 “노점상 경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맹목적으로 이를 추구할 경우 정반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베이징시 도시관리국은 노점상의 도로 무단 점거 등의 불법 행위를 철저하게 단속해 엄중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결국 리 총리의 ‘6억 빈곤층’ 발언에 시 주석이 분노했고, 최측근인 차이치 베이징시 당서기 등을 통해 리 총리의 업적 지우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