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기본소득한다” 진짜인지 구별하는 5가지 기준

입력 2020-06-09 17:22

기본소득 화두 되면서 개념 남용
‘모두에게, 무조건’ 보편성 핵심
개념, 기존제도와의 충돌 명확히 밝혀야
제대로 된 기본소득 공론화 가능

기본소득 공론화를 위해서는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소득은 ‘무조건, 모두에게’ 지급하는 현금이다. 그러나 최근 우후죽순 나오는 기본소득은 일부에게 선별적으로 주는 내용이 많다. 사실상 기존 제도를 ‘기본소득’으로 포장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기본소득을 남용하고 있다며 어떤 범위의 기본소득인지,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 설정, 재원 방안 등 3가지 전제 조건을 정확히 말해야 진정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무조건, 개인당, 현금을 주기적으로 주는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진다. 가장 큰 특징이 자산 및 소득·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부자, 가난한 사람, 노인, 청년 등 모두에게 준다는 것이다. 이에 이 특징 없이 일부에게 준다면 기존 현금성 복지 제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기본소득이 ‘청년층’으로 국한된다면 전통적인 기본소득이라고 보기 힘든 것이다. 기존 청년수당의 확대로 봐야 한다.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모두를 지급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기본소득 개념에 가깝다.

따라서 정치권은 주장하는 개념이 기본소득인지, 기존 복지 확대인지 먼저 명확히 말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부 특징만 차용한 ‘부분적 기본소득’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의 핵심인 ‘보편성’이 없다면 이 역시 현금 수당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굳이 기본소득을 논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치권은 복지 체계와의 관계에 대한 입장도 내놔야 한다. 전통적인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현금성 복지와 충돌이 일어난다. 또 증세를 한다고 해도 재원은 한도가 있기 때문에 기존 제도와 기본소득을 병행하기 쉽지 않다. 기본소득 도입시 복지 제도가 통폐합 되면서 저소득층은 오히려 지원액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또한 기존 실업급여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해 근로 유인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각 대선 주자들은 기본소득이 복지 체계를 어느 수준까지 대체할지, 중복 지급을 할지 등에 대한 설명도 해야 한다.

재원 방안도 중요하다. 금액이 크고, 기존 현금성 복지 제도와 병행할수록 필요한 돈의 규모는 커진다. 큰 폭의 증세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기존 제도와 병행하되 금액은 줄이고, 지출 구조조정과 소폭의 증세로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장·단점도 명확하다. 기본소득은 금액이 크지 않으면 ‘보편성’ 장점이 크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모두 100원씩 받는 것 보다는 취약계층에 1만원을 몰아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본소득 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보편적 기본소득 찬반 논란과 시사점’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잠재성장률을 제고할 수 있지만,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과 구직·근로의욕 저하도 가져올 수도 있다.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어떤 나라도 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본소득 논의에 찬성한다면서도 “기본소득제의 개념은 무엇인지, 복지 체제를 대체하자는 것인지, 보완하자는 것인지, 재원 확보 방안과 지속 가능한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논의와 점검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기본소득이 화두가 되면서 남용되고 있는데, 개념을 정리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시작될 수 없다”며 “모두에게 무조건 주는 기본소득 특징 등이 없다면 기존 제도와 다르지 않는데, 왜 굳이 기본소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박재찬 기자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