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장 기각 후… 검찰과 변호인단의 동상이몽

입력 2020-06-09 17:00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9일 검찰과 변호인 측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나타냈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과 기본적 사실관계가 인정됐다는 대목에 주목한다. 변호인단은 구속 필요성과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법조계는 이번 결정이 혐의 소명 여부는 담기지 않은 전형적 기각 사유라고 본다. 내용이 방대한 만큼 재판에서 다투는 게 맞는다는 취지로 불구속 재판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해석이다. 검찰은 수사 동력과 명분을 유지하게 됐고 이 부회장은 불구속이라는 실질적 결과를 얻어낸 심사가 됐다.

전날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던 원정숙 부장판사는 “사실관계는 소명됐지만 구속 필요성 및 상당성은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구속 요건 중 상당성은 혐의가 충분히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고, 필요성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즉각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환영 입장을 냈다. 향후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기소 여부를 판단해주길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자료를 고려할 때 영장 기각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은 1년6개월에 걸친 수사에도 이 부회장을 구속할 만한 ‘결정적 한방’을 갖추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다만 검찰에선 법원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지시·보고 체계 등 기본적 사실관계를 인정한 것이라며 고무적인 반응도 나온다.

검찰은 또 원 부장판사가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정도를 충분한 재판을 통해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한 것에 주목한다. 검찰은 영장심사에서 주요 피의자들 간에 보고 관계 등과 관련해 진술이 엇갈리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중요 사실관계는 인정한 가운데 피의자들 중 누구의 책임이 큰지 따져 봐야 한다는 취지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는 게 검찰 해석이다. 어느 정도 불법적인 사실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그 과정에서 이뤄졌던 자사주 매입 등 기본적 사실관계만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회장 측은 합병 과정에 애초 아무런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의자 간 책임 소재를 따지거나 진술이 엇갈릴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선 결국 영장 결과와 무관하게 혐의 소명 여부는 재판에서 따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영장기각 사유를 두고 혐의의 소명 여부를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측 주장이 다르면 사건 기록을 통해 심증을 형성해야 하는데 기록 20만쪽을 하루에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이번 기각 결정에는 혐의의 소명 여부 판단은 일체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이번 사건은 상당히 복잡한 사안이다. 영장 단계 결과를 놓고 혐의가 소명됐다 안됐다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재청구의 실익이 크지 않은 만큼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향후 수사심의위 절차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안을 심의위 권고에 따라 불기소 처분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법원의 언급도 심의위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성원 허경구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