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9일 현재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상선 공용망 등 남북간 통신연락 채널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북측이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를 통해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정오부터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한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선을 차단·폐기하겠다”고 밝힌 지 3시간만이다.
우리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의중을 먼저 파악하고 대처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북한이 연락선을 차단한 상황에서 정확한 의도나 배경을 알아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긴박했던 하루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오전 6시쯤 이렇게 발표했다. 노동신문은 “2020년 6월 9일 12시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 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겠다”고 했다. 대남 사업을 대적 사업(적대시 전략)으로 전환하겠다고도 했다.
북한 보도 이후 통일부와 국방부, 청와대, 국정원 등은 상황 파악에 나섰다. 통일부는 이날 9시 연락사무소를 통해 개시 통화를 시도했으나 북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국방부도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양측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을 통해 북측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통일부는 “남북 간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방부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두 부처는 북측이 예고한 시한인 12시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남북 연락사무소의 연락은 오전 9시 개시 통화와 오후 5시 마감 통화 등 두차례 진행된다.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이날 정오 12시에 추가적으로 북한과 통화를 시도했다. 북한은 응답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자제했다. 따로 반응을 내기보다 북한의 속내를 분석하는 게 우선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자칫 정교하지 않은 메시지가 발신될 경우 살얼음판 속 남북 관계가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청와대도 이날 오전부터 각급 단위에서의 회의를 열고 북한 조치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직통 전화가 설치돼 있다. 이 전화는 2018년 4월 20일 개통됐다. 당시 청와대는 설치 완료 직후 4분19초 동안 북측과 시험 통화를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시험통화 이후 직통 전화를 이용한 통화가 이뤄졌다고 밝힌 적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북한이 모든 연락선을 끊겠다고 하면서 이 전화도 연결이 막힌 것으로 관측된다.
향후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북한이 남북 소통 채널의 완전 폐기를 선언하고 실제로 연락선이 불통되면서 남북 관계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은 통신연락선 폐기가 남북관계 단절의 ‘첫 단계’라고 한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업지구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북한이 실제로 연락사무소 폐쇄 조치를 한 만큼, 곧바로 군사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 남북은 군사합의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군사훈련 중지, MDL 인근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비무장지대(DMZ) 안의 감시초소(GP) 일부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등을 실천했다. 하지만 서해 해상에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 구역 설정, 남북한 군사 문제를 논의하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남북 공동 유해 발굴 사업 등은 북한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이행하지 못했다. 합의가 파기되면 북한이 곧바로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끊어진 남북 관계…문 대통령, 중재자로 다시 나서야
북한이 전면적인 남측 압박 전략을 취한만큼, 우리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나 관련 법 통과만으로 북한과 대화가 재개하긴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중재자로서 북한과 미국 간 대화 재개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