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찰과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한 ‘울산 보도연맹사건’ 피해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피해 유족 4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당시 경남 울산군 소속 군인·경찰들은 1950년 6월부터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을 소집·연행해 10차례에 걸쳐 집단 총살했다. 연맹원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407명이 희생됐다고 확정했다.
희생자로 인정된 6명의 유족과 처형자명부에 적힌 9명의 유족 등은 2016년 8월 “정당한 사유 없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살해됐다”며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1심·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소멸됐다”며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법 조항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울산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2007년 11월부터 9년이 지난 2016년 8월에서야 소송을 제기했다”며 “정부가 소멸시효 주장을 하지 않겠다는 신뢰를 부여한 때부터 상당한 기간 안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가 2018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과 중대 인권침해 및 조작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위헌 결정했다”며 “이 같은 사건에서는 객관적 기산점을 기준으로 하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주관적 기산점과 이를 기초한 단기소멸시효만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해발생과 가해자를 안 날은 진상규명 결정일이 아닌 진상규명 결정 통지서가 송달된 날”이라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