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오랜만에 먹어서 좋아요.”
친모와 의붓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린 경남 창녕의 9살 소녀가 지난달 29일 거리에서 만난 시민에게 한 말이다. 시민은 멍과 상처투성이의 소녀를 응급치료한 뒤 이날 경찰에 신고했다. 소녀는 경찰 조사에서 “2년 전부터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소녀를 도와준 시민 A씨는 8일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잔인한 짓을 당해온 아이였다”며 피해 아동 B양과의 첫 만남을 오마이뉴스에 밝혔다. 그는 당일 오후 창녕에 있는 한 아파트 근처에서 B양을 발견했다며 “처음 봤을 때 아이 모습은 엉망이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B양은 신발도 신지 않은 잠옷 차림이었다. 아파트 담벼락 옆에 서 있었는데, A씨는 승용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 사이드미러로 B양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곧장 차에서 내려 B양에게 다가갔다. B양의 얼굴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눈에도 핏줄이 보였다. A씨가 “어디에 가느냐”고 묻자 B양은 “슈퍼에 간다,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A씨는 데려다주겠다며 B양을 차에 태워 사정을 물어봤다고 한다. B양은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나왔다”며 배가 고프다는 말을 반복했다. A씨는 편의점으로 B양을 데려가 먹을 것을 사줬다. 맨발인 B양을 위해 신고 있던 슬리퍼도 벗어줬다.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개된 편의점 CCTV에서 B양이 어른 슬리퍼를 신고 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A씨는 “(B양의) 머리카락을 들어보니 치료가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아문 상처들이 있었다. 앙상한 몸에도 수많은 상처 자국이 있었다”며 “손가락 일부는 화상을 입어 수포가 찬 상태였다”고 말했다. B양은 A씨에게 의붓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고, 친모가 동생을 돌보는 틈을 타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A씨는 “(B양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면서 “많이 굶어서 그런지 쉬지 않고 먹더라. 밥을 오랜만에 먹어서 좋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B양은) 맞아서 멍이 들면 멍이 빠질 때까지 집에 있다가 학교에 갔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B양은 현재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호를 받고 있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달 15~19일 사이 퇴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 당시 온몸에 있던 멍과 얼굴 부기도 거의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얼굴 부위 MRI 촬영 결과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손에 있던 화상 부위도 물집이 다 제거된 상태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B양은 경남 거제에 거주하다가 지난 1월 가족과 함께 창녕으로 이사 왔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이에 B양 부모의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양의 친모 C씨(27)와 의붓아버지 D씨(35)를 2018년부터 최근까지 B양을 상습 학대한 혐의(아동학대)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D씨가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해서 때렸다’고 시인하면서도 일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며 “C씨는 조현병 환자인데 지난해부터 치료를 받지 않아 증세가 심해졌고, 이에 딸을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