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합병·승계를 둘러싼 의혹으로 또다시 구속 위를 맞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까스로 구속을 면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 부회장은 검찰 출석 16시간 만인 9일 오전 2시40분쯤 구치소를 빠져나와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몰려든 취재진이 구속영장 기각된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합병‧승계 의혹 여전히 부인하냐는 질문에도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기 중인 차량에 탑승하던 이 부회장은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남겼다. 다소 지친 듯한 이 부회장은 특별한 표정변화 없이 구치소를 빠져나갔다. 이 부회장의 귀가는 전날 오전 10시30분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검찰에 출석한 지 16시간이다.
이 부회장이 구치소를 빠져나간 직후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도 구치소 정문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타를 타고 떠났다. 이들도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채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날 구치소 현장에는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단체 회원들과 유튜버 등 20여명이 자리해 ‘이재용 구속반대’를 외쳤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치소 주변에 1개 중대(90여 명)을 배치했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2시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최지성 전 삼상전자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주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마찬가지로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영장 기각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고 한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4일 이 부회장 등 3명에게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부정거래,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 등은 2015년 5월 이사회의 합병 결의 이후 호재성 정보를 집중적으로 띄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를 동시에 부양하는 등 합병 전후 두 회사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같은 해 연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000억원대 회계사기 혐의 역시 모회사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진행된 합병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의심한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시세조종·분식회계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보강수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 측이 기소 여부 판단을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겨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한 상태여서 향후 수사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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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