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법원 “구속할 만큼의 소명 부족”

입력 2020-06-09 02:23 수정 2020-06-09 03:07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번째 구속 수감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났다. 이 부회장을 구속해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에 방점을 찍으려던 검찰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전날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오전 2시 “불구속 재판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사실 관계는 소명됐고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한 증거는 확보된 상태”라며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볼 때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이 이 부회장을 구속할 정도로 충분히 소명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또 이미 1년 6개월간 수사가 진행된 점을 고려할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는 크지 않다는 이 부회장 측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은 분량이 워낙 방대해 1심 구속기간인 6개월 안에 끝내기 어렵다”며 “이런 점도 판단에 고려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번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 등에 비추어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며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법원 판단은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라며 “향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절차에서 기소 여부 등이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이 부회장은 곧바로 귀가했다. 전날 오전 10시30분 열렸던 이 부회장의 영장심사는 오후 7시 마무리됐다. 이 부회장은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등의 심사가 오후 9시10분 최종 마무리되자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영장 결과를 기다렸다. 영장 기각 후 이 부회장은 오전 2시42분쯤 서울구치소 정문으로 걸어나왔다. 이 부회장은 취재진이 혐의 부인 여부 등을 묻자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주가 조작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의심한다. 또 201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도 합병을 정당하기 위한 분식회계였다고 본다. 이 부회장 측은 합병 과정은 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됐고, 삼성바이오 회계처리는 국제회계 기준에 따라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법원은 이 부회장 측의 불구속 수사에 손을 들어줬다. 출소한 지 2년 4개월 만에 다시 구속 수감 위기에 놓였던 이 부회장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향후 재판에서 무죄 입증을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면서 지시 및 공범관계 등 혐의를 소명할 만한 충분한 자료가 확보됐다는 입장이었다.




나성원 구자창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