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1년…경찰 강경진압·코로나·홍콩 보안법에 ‘중대 기로’

입력 2020-06-08 17:44
지난달 24일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홍콩 경찰.AP연합뉴스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된지 1년이 지났다.

많게는 하루 20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주말마다 홍콩 거리를 가득 메웠고, 지난해 11월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는 결실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금까지 9000명 가까이 체포하는 등 강경 진압으로 시위 동력을 약화시켰다. 중국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반중국 시위 자체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홍콩 지키기에 나섰지만, 중국은 홍콩에 대한 내정간섭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와 인권을 누려온 홍콩 젊은이들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지난해 4월부터 산발적으로 이뤄졌으나 6월 9일 100만명이 거리행진에 나서면서 장기간의 민주화 시위에 불을 댕기는 기폭제가 됐다. 홍콩 인구 740만명 가운데 100만명이 모인 인파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이후 최대 규모 시위로 기록됐다.

6월 15일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 무기 연기를 발표했지만 다음 날인 16일에는 200만명 가량의 시민이 참여하며 법안의 완전 철폐와 람 장관 사퇴를 요구했고 시위는 갈수록 과격한 양상을 보였다.

캐리 람 장관은 9월 4일 송환법 철회를 공식 선언했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시위대에 총을 겨누는 홍콩 경찰.연합뉴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한 여기자가 경찰이 쏜 고무탄에 눈을 맞아 실명했고, 11월 8일에는 주차장 건물에서 떨어진 홍콩과기대생이 머리를 다쳐 나흘 만에 숨졌다. 시위 참가자가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홍콩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최후의 보루’인 홍콩이공대에 집결해 화염병, 돌, 투석기, 활까지 동원하며 격렬하게 맞섰으나 경찰의 봉쇄 작전에 막혀 1100여 명이 체포되거나 투항했다.

시위대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압박도 거세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19기 4중전회에서 홍콩에 대한 ‘전면적 통제권 행사’를 천명했고, 지난해 말 강경파인 크리스 탕이 홍콩 경찰 총수로 임명된 데 이어 홍콩 연락판공실(중련판)과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이 교체되면서 시위 대응 방식도 더욱 정교해졌다.

이후 11월 24일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전체 452석 중 400석 가까이 싹쓸이하는 압승을 거뒀으나 중국 정부의 거듭되는 강경 기조에 시위 동력은 크게 약화됐다.

특히 올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도심 시위를 하기 어려운 상황도 만들어졌다.

게다가 중국 중앙정부가 지난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초안을 처리한 홍콩보안법은 시위 자체를 봉쇄할 수 있는 무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달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로이터연합뉴스

홍콩 보안법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행위 등을 금지·처벌하는 내용을 담아 반중 인사 등을 최고 30년형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홍콩 최고 부자인 리카싱 전 청쿵그룹 회장과 호텔업계 부호 마이클 카두리 등 홍콩에 상장회사를 둔 최대 부호 9명이 모두 홍콩 보안법 지지 입장을 밝히는 등 재계의 ‘중국 눈치보기’도 심화되고 있다.

홍콩 범민주 진영은 지난달 27일 홍콩 보안법 규탄 집회를 열기로 했으나 경찰의 철통 차단에 막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규모 체포와 코로나19 확산, 홍콩보안법 강행, 경기침체 등 복합적인 이유로 시위대의 동력이 상실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 4일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6·4 천안문 민주화 시위’ 31주년 집회에 1만여 명이 참여했고,홍콩 노동계와 학생단체는 홍콩보안법에 맞서 총파업, 동맹휴학, 철시 등 ‘삼파(三罷) 투쟁’을 추진키로 해 얼마나 시위 동력을 살려낼지 주목된다.

또 오는 9월 입법회 선거에서 친중파 진영과 범민주 진영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는지도 향후 홍콩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홍콩 보안법이 미·중 갈등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는 지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은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제거하는 절차를 시작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3일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강행할 경우 영국 이민법을 개정해 홍콩인에 시민권을 부여토록 하겠다고 밝히는 등 서방의 공세도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역시 중국 및 홍콩과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어 과감하게 보복 조치를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중국은 보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국이 홍콩을 제재하면 홍콩 주재 서방 기업들이 홍콩 시장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대가가 매우 클 것”이라며 “보복 조치는 미국에 더 큰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