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찍겠다” “생각 좀 하라”… 美공화당 거물들 줄줄이 ‘反트럼프’

입력 2020-06-09 00:35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콜린 파월 전 미 합참의장(오른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외쪽).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공화당의 거물들이 자기 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군부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데 이어 정치적 친정인 공화당 내에서도 반(反) 트럼프 기류가 거세지고 있다.

1989년 흑인으로는 처음 합동참모본부장을 맡은 콜린 파월은 7일(현지시간) CNN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지만 공화당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나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까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 줄곧 강경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우리에겐 헌법이 있고 헌법을 따라야 한다”며 “대통령은 헌법으로부터 도망쳤다”고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군 투입을 반대한 군 관계자들을 거론하며 “그들이 한 일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트위터를 통해 “우리를 처참한 중동 전쟁으로 끌어들인 데 대해 매우 책임이 있는, 진짜 먹통인 콜린 파월이 또 다른 먹통인 ‘졸린 조 바이든’을 찍을 것이라고 방금 발표했다”고 비난했다.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파월은 합참의장을 맡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미국에선 아이젠하워 이후 존경받는 군인으로 평가받는다. 무력 개입을 피하되 국가 이익을 위해 불가피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 속전속결로 승리를 결정짓는다는 그의 전략은 ‘파월 독트린’이란 말로 남아 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엔 국무장관을 맡았다.

파월에 이어 국무장관에 오른 콘돌리자 라이스도 트럼프 대통령 비판에 가세했다. 미국의 첫 흑인 여성 국무장관이기도 한 라이스는 CBS방송에 출연해 “어떤 말을 하기 전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며 “트위터는 잠시 접어두고 국민과 대화하길 바란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침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를 향해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고 위협한 일을 겨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이 말은 1967년 미국에서 흑인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졌을 때 경찰이 한 협박 발언으로 대통령이 자국민들을 상대로 할 말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라이스 전 장관은 “대통령이라면 지지층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게 말해야 한다”며 “우리의 깊은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할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외에도 하원의장을 지낸 폴 라이언, 본 베이너 등 유력 공화당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을 넘어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방안까지 저울질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부시 전 대통령과 밋 롬니 상원의원, 작고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아내 신디 매케인 등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유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세인트존스 교회에서 성경을 들고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걸어서 교회까지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주방위군이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강제 진압해 비판이 일었다. 로이터연합뉴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걸려 있는 올해 대선은 그때와 의미가 다르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2016년에는 트럼프 당시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관측이 많았다. 또 민주당이 8년간 집권한 터라 선거에서 진다고 해도 공화당 입장에선 위협받을 의제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반대는 보수적인 법관 임명, 세금감면 등 공화당이 추진해온 핵심 정책들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분노를 사는 일이라고 NYT는 전했다.

공화당 지지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경기침체, 경찰의 흑인 가혹행위를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에 대한 정부 대응이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지난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중 46%만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답했다. 2017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공화당 지지자의 17%는 지금 선거가 실시되면 바이든 후보를 찍겠다고 답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