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당국이 뒤늦게 유치원생에 대한 혹서기·혹한기 원격수업 지침을 내리면서 현장에서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동안 유치원생은 원격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정부가 수업일수 때문에 폭염과 혹한기 등원이 우려되자 별다른 대책 없이 말만 바꿨다는 지적이다.
서울 강북구의 한 유치원에 근무하는 A교사는 8일 “유치원생은 원격수업이 안 된다면서 수업일수로 하나도 인정 해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가능하다는 건 무슨 논리냐”며 불평을 쏟아냈다. A교사에 따르면 일부 유치원은 3월부터 서울시교육청 지시에 따라 ‘집콕유치원’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택배나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놀이자료를 원생 가정에 제공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서비스 차원이었을 뿐 수업일수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원격 수업을 시행하지 못했던 유치원이 지난달 27일에야 개학하면서 앞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던 초·중·고보다 수업일수가 훨씬 많이 남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원칙대로라면 올 여름 폭염과 한겨울 혹한에도 유치원에 등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자 교육 당국은 부랴부랴 폭염과 혹한시에 한시적으로 유치원 원격수업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유치원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치원은 학교와 달리 돌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학부모 대부분이 등원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A교사는 “공문이 내려온 뒤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을 했는데 등원 희망 응답률이 매우 높아 원격수업은 진행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병설유치원 B교사는 “초등학교와 같은 급식실을 사용하는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외부 업체를 통해 급식을 해결해야 한다”며 “만약 코로나19나 식중독 집단감염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법정 수업일수를 줄일 수 없다면 개학 전 실시한 원격수업을 수업일수로 소급적용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학습 꾸러미, 놀이자료 등을 통해 가정학습을 계속 도와왔으니 수업일수로 소급적용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원격수업을 수업일수로 소급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장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대안을 내려고 한다”면서도 “시행령 등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선 (수업일수 소급적용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