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 ‘무관객 영화제’로 치러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의미 있는 성과를 얻고 열흘간의 시네마 여행을 마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준비된 프로그램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겪었으나 특별한 운영으로 개최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세계 주요 영화제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초 한차례 연기된 끝에 지난달 28일 시작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관객이 모이는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된 채 진행됐다. 개막식엔 영화감독과 조직위 관계자 등 90여 명만 참석했고, 6일 폐막식은 아예 열리지 못했다. 전주 영화의 거리 일원에서 펼쳐졌던 현장 행사와 게스트 초청 일정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심사 상영’과 ‘온라인 상영’ ‘장기 상영’ 등 세 가지 특별 시스템으로 무난히 여정을 마무리했다.
먼저 출품작 심사는 각 부문 심사위원과 영화감독, 배우 등 최소 인원만 상영관에 입장한 채 진행됐다. 국제 경쟁작을 심사할 때 작품과 제작배경에 대한 설명 등은 감독과 온라인 TV를 통해 이뤄졌다.
제작사와 감독의 허락을 구한 작품은 온라인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관객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웨이브(WAVVE)에서 출품작을 관람했다.
온라인 상영 작품은 모두 97편. 당초 저작권 문제와 영상 유출 우려가 제기됐으나 출품작 180편의 절반이 넘는 작품이 동참했다.
10일간 온라인 결제 건수는 모두 7048건. 관객들은 국내외 장편영화와 한국 단편영화(4편 묶음)는 각 7000원, 해외 단편영화(1편)는 2000원에 즐겼다.
또 영화제측은 극장에서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9일부터 9월20일까지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출품작을 볼 수 있도록 장기 상영회를 열 계획이었다. 상영작은 출품작의 대부분인 174편에 이르렀다.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개막일부터 따져 모두 116일, 최장기 영화제로 기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의 재확산 우려로 잠정 연기됐다. 향후 일정은 코로나19 극복에 앞장서고 있는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한 ‘덕분에 챌린지 상영회’로 첫 단추를 끼울 것을 준비중이다.
올해 전주영화제는 작품과 프로그램을 온전히 선보일 수는 없었지만 칸영화제 등이 취소되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명맥을 이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송순진 홍보팀장은 8일 “일정과 운영 방안이 대폭 변경돼 준비기간이 짧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최대치를 이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감독 초청 관례를 지키지 못하고 해외거장들이 불참한 것은 큰 아쉬움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번 영화제 국제경쟁 대상의 영예는 중국 영화 ‘습한 계절’(감독 가오 밍)이 차지했다. 중국 선전에 사는 젊은 네 남녀가 대기를 가득 메운 습기처럼 불통하며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보여준다.
지난 1일 시상식에서 가오 밍 감독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전 세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지금, 영화라는 밝은 빛이 우리 삶에 온기와 힘을 주고 있다”며 “머지않아 곧 전 세계의 영화관이 다시 열려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국제경쟁 작품상은 ‘천 명 중의 단 한 사람’(감독 클리리사 나바스), 심사위원특별상은 ‘그해 우리가 발견한 것’(감독 루이스 로페스 카라스코)이 각각 수상했다.
올해 125편이 출품된 한국경쟁에서는 김미조 감독의 ‘갈매기’와 신동민 감독의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가 공동으로 대상(웨이브상)을 받았다. 지난해 신설된 배우상은 ‘빛과 철’의 염혜란 배우,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오정세 배우에게 돌아갔다.
한국경쟁 심사위원들은 “관객 없는 영화제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상영을 결심한 감독님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퍼핏 애니메이션과 스톱모션의 대가 ‘퀘이 형제’의 작품 전시회는 팔복예술공장에서 오는 21일까지 이어진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