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독설, 오빠는 민생…김정은·여정 역할분담 더 뚜렷해졌다

입력 2020-06-08 16:2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역할 분담이 더욱 뚜렷해졌다. 북한 대남 부서가 김 제1부부장 지휘 하에 각종 독설을 퍼붓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민생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내치, 김 제1부부장은 대남을 담당하는 ‘쌍두 체제’가 꾸려진 셈이다.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 이후 처음으로 업무 통화를 거부하며 연락사무소 폐쇄도 불사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가 지난 7일 김 위원장 주재로 소집됐다고 8일 보도했다. 회의에서는 화학공업 발전과 평양시민 생활 보장, 당 규약 개정, 조직 문제 등이 다뤄졌다. 특히 석탄으로 인조석유를 생산하는 ‘탄소하나(C1)화학공업’과 북한산 원료를 활용한 ‘카리(칼륨)비료공업’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 김 위원장은 비료 생산능력 향상을 위한 화학공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건 내용을 미뤄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국 회의에서는 대북전단 등 대남정책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대남정책은 ‘대남사업 총괄’로 통하는 김 제1부부장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김 위원장 자신은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제1부부장은 정치국 후보위원 자격으로 당시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의 업무 분담을 두고 남북관계에 일부 여지를 남겨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사람이 각각 ‘굿 캅·배드 캅’(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월에도 김 제1부부장이 대남 비난을 한 뒤 김 위원장이 위로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며 “김 위원장 자신은 남북, 북·미 관계를 직접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정상 외교의 여지를 남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대남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북한은 2018년 9월 연락사무소 개설 이후 1년9개월 만에 처음으로 업무 통화 수신을 거부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에서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으면 연락사무소를 폐쇄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김 제1부부장의 언급 이후 나흘 만에 연락사무소 차원의 남북 간 소통이 단절되면서 북한이 실제로 사무소 폐쇄를 실행에 옮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깊어졌다.


북한 주민과 대외 매체를 통한 대남 비난전도 계속됐다. 우리민족끼리는 문재인정부를 겨냥해 “양 대가리 걸어놓고 말고기 판다는 말이 있는데 어찌 보면 남조선당국을 두고 한 소리 같다”며 “사대매국행위, 동족 적대시, 전쟁책동 등 이전 이명박근혜 보수 ‘정권’의 악취 나는 행적을 그대로 보는 듯 하다”고 비꼬았다. 우리 측과 가까운 개성에서는 조선직업총동맹 산하 노동계급과 직맹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대남 비난 집회가 열렸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