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모든 게 도전이었다. 방송은 일주일에 한 번, 이마저도 명확한 기승전결 없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 율제병원에는 악당도, 갈등도 없었다. 빠른 전개에 자극적 요소가 풍부하게 더해진 작품 사이에서 이런 드라마가 경쟁력이 있을까. 많은 이가 우려했지만 저력은 오히려 편안함에서 나왔다. 주 1회 편성이 현장에 약간의 여유를 선물하니 드라마가 주는 위로가 한층 두터워졌다.
신원호 감독은 드라마 종영 후 국민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안 보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드라마보다 일상에 녹아드는 친구 같은 드라마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적중했다. 6.3%(닐슨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의 시청률은 단 한 회도 떨어지지 않았고 최종회에서는 14.1%를 기록했다.
비결을 꼽자면 주 1회 편성 아닐까. 방송국이 지금까지 드라마 주 2회 편성을 고집했던 이유는 가성비 때문이다. 1회만 송출하기 위해 일주일을 촬영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무리해서라도 간접광고(PPL) 수익 등을 더 얻길 바랐다. 이런 공고한 틀을 깬 게 신 감독이다. 제작발표회 당시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그는 “주 1회 결정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찾은 해결책”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치열한 경쟁과 치솟는 제작비, 바뀌는 노동환경을 고려했을 때 주 2회 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드라마가 있을까”라며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주 1회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 시청 형태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촬영해보니 장점은 배가됐다. 신 감독은 “주 1회 편성으로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싶었다”며 “본격 제작에 들어가기 전 스태프 협의체를 구성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전 근무시간을 협의하고 산업 안전에 대한 오프라인 집합 교육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사전에 스태프들과 협의를 하니 오히려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는 “떳떳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며 “시스템과 규칙이 정해지고 합의의 장이 생기니 미안할 일이 줄었다. 사전에 합의한 선을 지켜서 촬영했기 때문에 더 요구하거나 은근슬쩍 스태프들의 권리를 침해할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현장은 한결 여유롭게 돌아갔다. 신 감독은 “주 1회 편성으로 현장의 피곤함이 전체적으로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며 “그 여유가 결국 다시 현장의 효율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많은 스태프가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며 미안해 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백미를 한 가지 꼽자면 ‘미도와 파라솔’인데, 배우들이 밴드를 만들고 시간을 들여 연습할 시간이 있었던 것도 주 1회 편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 감독은 “악기라고는 다뤄본 적도 없던 연기자들에게 여유 있는 연습시간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도 주 1회 방송이라는 형식이 준 여유 덕분”이라며 “시청자는 물론이고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 다짐을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모든 도전이 그렇듯 시작 전에는 부담도 있었다. 시청자가 드라마의 호흡을 따라와줄까. 하지만 현장의 편안함은 화면에 고스란히 전해졌고 시청자에게 닿았다. 신 감독은 “많이 활용되는 드라마 형식(16부작, 20부작 등)이 아닌 주 1회나 시즌제로 갈 수 있는 드라마가 여러 플랫폼에서 많이 편성돼서 ‘뉴노멀’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신 감독은 “결국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앞으로 5분 물, 30분 물, 120분 물 등 상영시간의 변화나 3부작, 6부작 등 제작 편수의 변화같이 드라마 형식이 다양화되고 이와 함께 플랫폼이 확장되면서 수많은 형태의 개성 넘치는 작품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주는 왠지 모를 안락함은 신 감독의 소신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를 만들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드라마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지는 시청자의 몫이죠. 그래서 교조적으로 ‘이런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접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 목표했던 건 ‘공감’이었는데 이번 드라마는 특히 따뜻했어요. 생전 드라마 안 볼 것 같던 분들에게서 오는 감동의 반응도 많았고요. 이런 게 제가 계속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 아닐까요. 온기가 공유됐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전하고 싶은 건 모두 전해진 셈이에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