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2개 주민번호로 산 여성… 법정 소송서 ‘승소’

입력 2020-06-08 11:33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한 민원인이 주민등록등본을 발급 받는 장면. 뉴시스

행정기관의 실수로 27년 동안 두 개의 주민등록번호와 성(姓)으로 살아온 여성이 법정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A씨가 “주민등록번호 부여와 주민등록증 교부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서울의 한 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8일 밝혔다.

1993년생인 A씨는 1차 출생 신고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숫자 7개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이후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A씨의 모친은 이혼 후 재혼하면서 1997년 새아버지인 B씨 성으로 A씨에 대한 2차 출생신고를 했다. 이번에는 뒷자리 숫자 7개가 있는 주민등록번호가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어머니 호적에 A씨가 이미 첫 번째 성으로 등재됐다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반려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새아버지 B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도 자녀로 기재돼지 못했다.

A씨는 앞자리 숫자 6개만 있는 첫 번째 주민등록번호와 A씨 성, 출생신고와 가족관계 등록이 돼 있지 않은 두 번째 주민등록번호와 B씨 성을 모두 보유하게 됐다. 어느 것 하나 법적으로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A씨는 이후 새 아버지의 B씨 성과 두 번째 주민등록번호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A씨는 2010년 새아버지가 사망한 후 B씨로 살아보려고 법원에 성과 본에 대한 창설허가를 신청하거나 어머니와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을 위해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지만 법적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A씨는 20대 중반이 된 2018년 관할 구청에 “A씨와 B씨는 동일인이므로 B씨로 된 주민등록증을 반환할 테니 A씨로 된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신청했다. A씨로라도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구청이 이를 거부하자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A씨의 유전자검사 결과 등을 보면 두 주민등록번호의 인물은 동일인으로 인정되므로 구청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는 이중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된 경우가 아니고 달리 신분 기재를 의심할 정황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1차 출생신고 당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미부여된 것에 대해서도 “법령이 예정하지 않은 이례적 결과이고, 이는 구청이 입증해야 한다”며 “후속 조치 결여를 입증하지 못한 데에 대한 불이익 또한 구청이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