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은 살아있다’ 코로나시대 활약하는 K리그 베테랑

입력 2020-06-08 11:00 수정 2020-06-08 11:00
성남 FC 골키퍼 김영광이 자신의 K리그 500번째 경기였던 7일 하나원큐 K리그1 2020 5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 앞서 홈구장 탄천종합운동장에 잔디 위로 입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올해 만 36세인 K리그1 성남 FC 골키퍼 김영광의 장갑은 요즘 뜨겁다. 7일 홈구장인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5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시즌 첫 승을 올리려 사력을 다한 대구의 슈팅을 그는 막고 또 막았다. 두 자릿수가 박힌 여느 선수복과 달리 등에는 세 자리 숫자 ‘500’이 쓰여 있었다. 여태 K리그에서 뛴 경기를 상징하는 숫자다. 역대 더 많은 경기를 뛴 골키퍼는 은퇴한 김병지와 최은성뿐이다.

바야흐로 K리그1은 노장 전성시대다. 7일 5라운드까지 진행된 K리그1에서 나이 서른 중반의 베테랑 선수들이 유독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고 있다. 비교적 오래 선수 생활을 하는 수비나 골키퍼 이외의 다른 포지션에서도 같은 경향이 보인다. 전문가들은 최근 K리그가 선수 생활을 길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 외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가 어려워진 현 상황에서 베테랑들의 노하우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전후방 가릴 것 없이…나이야, 가라!

전북 현대 공격수 이동국(오른쪽)이 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FC 서울과의 슈팅에서 상대 수비 김남춘과 경합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만 40세로 K리그 현역 최고령 선수인 이동국의 발등도 5라운드에서 바빴다. 전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소속팀 전북 현대와 FC 서울의 경기 중 그는 후반 1대 2로 한 점 차 앞선 상황에서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는 추가골을 2개나 터뜨렸다. 공중에 떠오른 공을 예의 가차 없는 발리슛으로 연결하는 그의 슛폼은 흡사 어떤 경지에 오른 듯했다. 개막전에서 이미 보여줬듯, 전주성의 가장 날카로운 창은 여전히 이동국이었다.

앞서 상대편에서는 어느덧 만 35세를 맞은 서울의 공격수 박주영이 0대 1로 끌려가던 전반 추가시간 골문 정면에서 그림 같은 왼발 감아차기슛을 성공시켰다. 올 시즌 개인 첫 골이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그가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10골 7도움,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활약이었다. 박주영은 올 시즌에도 5라운드까지 전 경기 출전하고 있다. 공격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최용수 감독이 지금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다.

명가 수원 삼성에서는 올해 36세의 주장 염기훈이 팀의 경기력을 좌지우지한다. 개막전이었던 전북 경기만 해도 공수의 연결고리가 부실했던 수원은 다음 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염기훈이 중원으로 내려오는, ‘염기훈 시프트’를 실시해 강력한 전력의 상대를 한때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 염기훈이 중원에서 헌신하면서 뻑뻑했던 팀의 패스길이 그나마 매끄러워졌다. 염기훈은 다음 경기인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도 중원에 머무르면서 팀의 시즌 첫 승을 견인했다. 4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와 5라운드 광주 FC 경기에서도 그는 측면과 중원을 오갔다.

33세 이상 13人, K리그1 5라운드 15골 3도움

울산 현대 공격수 주니오가 6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0 5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포효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번 시즌 K리그1에 등록된 선수 중에서 만 33세 이상인 선수는 21명이다. 이중 5라운드까지 3경기 넘게 출전해 준주전으로 볼만한 선수는 절반이 넘는 13명이다. 이동국 등 국내선수 11명을 비롯해 만 33세인 울산의 주니오와 무려 38세인 대구 FC 데얀까지 합한 숫자다. 기여도도 적지 않다. 당장 여태까지 이들이 기록한 공격포인트만 해도 15골 3도움이다. 공격과 미드필드뿐 아니라 수비와 골키퍼 포지션이 섞여 있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이중 구단 별로는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성남이 3명으로 가장 많다. 골키퍼 김영광을 비롯해 전방의 양동현, 중원의 권순형이 선수단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다. 특히 양동현은 시즌 첫 경기에서 우아한 볼터치와 노련함으로 2골을 퍼부었다. 이후 서울과의 4라운드 경기에서도 성남은 공격을 조율할 양동현이 출전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경기력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5라운드 대구와의 경기에서도 그는 침착한 페널티킥으로 팀의 선제골을 넣었다. 권순형은 간결하고 촘촘한 패스워크를 자랑하는 성남 중원의 주동력이다.

승격팀 광주 FC에서도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공격수 김효기와 수비수 김창수가 자리 잡았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동료들이 승격 첫 시즌을 무사히 소화하는 데 핵심적인 임무를 맡고 있다. 디펜딩챔피언 전북에서는 국가대표 풀백 이용이 5라운드 모두 출전해 올 시즌 부족한 팀의 측면 공격을 돕고 있다. 부산 아이파크와 포항 스틸러스에서도 베테랑 수비수 강민수와 김광석이 각각 건재하게 활약하며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노장의 활약, 코로나19에 끄떡없는 몸 관리 덕분?

수원 삼성 주장 염기훈이 지난달 2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3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들과 맞서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K리그1에서 노장들의 활약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일단 이전보다 체계화된 구단의 선수 관리 시스템이 한몫했다는 평이 나온다. 각 구단의 선수 관리 방법이 보다 현대적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레 선수 수명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만큼 기존의 우수한 자원들을 대체할만한 어린 재능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우수 자원들이 과거보다 일찍이 해외로 먼저 눈을 돌리는 이유도 있다.

다만 올 시즌으로 한정했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요소는 코로나19로 인한 변수다. 시즌 개막이 늦춰지고 경기 빈도 등도 예전과 다르게 바뀌면서 스스로 몸 관리를 하는 데 익숙한 베테랑들의 노하우가 발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노장 선수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요령이 있다”면서 “다들 컨디션 조절이 힘든 상황이지만 이런 면에서 노장들이 어린 선수들보다 오히려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했다.

김 해설위원은 “선수가 컨디션을 관리하는 요령은 비단 운동시간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라면서 “훈련장 밖, 운동시간 외에도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시기일수록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베테랑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에게 경기력 관리를 위한 조언을 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젊은 선수들도 올 시즌 체력 관리가 중요한 요소인만큼 선배들에게 최대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