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친중파’ 한궈위 가오슝시장, 주민투표로 파면

입력 2020-06-07 17:41 수정 2020-06-07 18:00
지난 2018년 11월 대만 가오슝시에서 시장선거에서 승리한 한궈위 국민당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월 대만 총통선거에 제1야당인 국민당 후보로 나섰다가 차이잉원 총통에 대패한 한궈위 가오슝 시장이 주민소환투표 끝에 탄핵됐다. 대권 도전에 정신이 팔려 시정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다. 대만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이 주민소환투표로 파면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6일 중앙통신사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이날 진행된 주민소환투표에서 한 시장에 대한 탄핵안이 압도적인 표결로 통과됐다. 이로써 한 시장은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시장직에 당선된 후 1년6개월만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이번 소환 투표는 ‘위캐어가오슝’이라는 시민단체의 주도로 성사됐다. 이 단체는 한궈위가 시장에 당선된 직후 대선에 나가 시정에 소홀했다면서 투표를 발의했다. 이어 가오슝시 유권자의 10%를 훌쩍 넘는 37만7000여명이 동의 서명에 참여하며 소환투표가 이뤄지게 됐다.

대만 선거파면법 등 관계 법령상 파면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소환투표에서 파면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아야 한다. 또 찬성표가 전체 유권자 수의 4분의 1을 넘어야 한다. 가오슝시의 총 유권자 수는 229만여명으로 최소 57만4996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파면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날 투표에는 96만9259명이 참여해 42.12%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93만909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률 97.4%에 달하는 압도적인 결과다. 반대표는 2만5051표로, 전체의 2.6%에 그쳤다.

파면 투표에서 이같이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은 한 시장의 탄핵에 반대하는 지지층은 투표 보이콧을 선언하고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한 시장은 이번 소환투표를 민진당의 ‘정치적 셈법’으로 규정하고 유권자들에 투표 보이콧을 호소했다.

투표 결과 탄핵이 확정되자 한 시장은 “이번 소환 투표는 불공평하고 부당한 것이었다. 나는 민진당의 중상모략의 희생자”라며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130만명의 시민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투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결과에는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 시장이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의소송 등은 제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인지도가 낮던 한궈위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진당의 20년 텃밭이던 가오슝시장 선거에 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당은 민진당보다는 안정적인 양안관계를 중시하는 대표적인 ‘친중 세력’으로 분류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 시장의 탄핵에 작년 홍콩 민주화 시위 등을 계기로 촉발된 대만 내 반중 정서가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오슝시 선거관리위원회는 7일 이내에 투표 결과를 처리하는 절차를 밟아 파면 사실을 공고할 예정이다. 한 시장은 공고와 동시에 시장직을 잃게 된다. 관련법에 따라 향후 4년 동안은 가오슝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가오슝시장은 중앙정부가 파견한 권한대행이 맡게 되며 9월 2일 이전에 보궐선거가 열려 새로운 시장이 선출된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