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 홀. 기준타수 3타에 거리 150야드로 짧은 이 홀에서 쉴 새 없이 선두를 바꾸며 요동쳤던 리더보드의 ‘잠룡’ 김효주(25)가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김효주는 이 홀에서 티샷을 깃대 6m 앞에 붙인 뒤 침착하게 버디 퍼트에 성공했다. 김효주가 처음으로 단독 선두로 치고 오른 순간이다.
4라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공동 선두는 ‘와이어 투 와이어’로 프로 첫 승에 도전했던 한진선(23)과 3라운드에서 ‘라이프 베스트’인 10언더파를 몰아치고 상승세를 탄 베테랑 홍란(34)이었다. 하지만 공동 선두가 4라운드에서 나란히 부진하자 판세가 바뀌었다. ‘챔피언 조’에서 경기한 오지현(24), 수차례 역전승을 일궈낸 세계 랭킹 6위 김세영이 김효주와 함께 ‘3파전’을 펼쳤다.
이마저도 김세영·오지현이 달아나면 김효주가 동타로 따라잡는 추격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14번 홀에서 김효주는 둘을 앞질러 독주하기 시작했다. 이어 마지막 18번 홀에서 오지현을 뿌리치고 넘어간 연장전에서 김세영마저 따돌리고 올 시즌 첫승을 올렸다.
김효주는 7일 제주도 서귀포 롯데스카이힐 컨트리클럽(파72·6373야드)에서 2020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2개로 5타를 줄이고 최종 합계 18언더파 270타를 적어냈다. 사이좋게 동타로 최종 라운드를 완주한 김세영과 연장 18번 홀에서 김효주는 3m짜리 버디 퍼트를 낚아 우승을 확정했다. 파를 친 김세영의 퍼트가 홀컵 바로 옆을 빗나가면서 희비가 엇갈렸다.
롯데스카이힐 컨트리클럽은 김효주가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2012년에 아마추어로 초청을 받고 출전한 2012년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KLPGA 투어 우승을 차지한 곳이다. 당시의 우승을 계기로 김효주는 지금까지 롯데골프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우승이 없었던 김효주는 이곳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6년 12월 현대차 중국여자오픈 이후 3년 6개월 만에 KLPGA 투어 통산 11승을 수확했고, 올해 처음으로 거머쥔 우승 상금 1억6000만원을 손에 넣었다. 김효주는 우승을 확정한 뒤 방문한 클럽하우스 내 미디어센터에서 “너무 오랜만의 우승이어서 얼떨떨하다. 이번 우승으로 재도약할 계기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효주는 “아버지에게서 ‘6타를 줄이면 우승, 5타면 연장전’이라는 말을 들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아머지의 말이 맞아 떨어져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목표를 설정해준 것은 아버지였지만, 결국 김효주가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김효주는 이번 대회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나흘 연속으로 60타대 스코어를 썼다. 정규 라운드에서 결국 선두를 추격하고, 연장전에서 승리한 김효주의 짜릿한 역전승은 결국 자신의 꾸준함으로 이룬 결실이다.
앞선 사흘간 선두를 유지했던 한진선은 이날 2번 홀(파4)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한 뒤부터 흔들려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를 적어내고 4위로 완주했다. 한진선과 함께 우승을 경쟁했던 홍란은 보기 3개와 버디 1개로 무너져 투어 통산 5승이 불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중단으로 ‘제2의 고향’ 제주도에서 올 시즌 정규 투어를 출발한 세계 랭킹 1위 고진영(25)은 최종 합계 4언더파 284타를 기록해 공동 45위에서 완주했다.
서귀포=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