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뉴딜 광범위한 정책 추진
정부 지출 확대…과거와 현재 효과 달라
전문가들 “90년 전과 똑같은 재정지출은 피해야”
‘한국판 뉴딜’이 90년 전 미국 뉴딜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차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30년대 뉴딜은 정부가 과감한 지출로 경제 체질을 바꿨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정부 주도 정책 효과가 떨어지고 있으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미국 뉴딜의 재정 지출은 증세와 제2 침체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그린 지출로 눈을 돌린 건 바람직하나 세부 내용을 수정하자고 조언한다.
현 정부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1930년대 뉴딜은 3R(구제·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로 매우 광범위하게 추진됐다. 기반은 큰 정부의 과감한 나랏돈 투입이다. 정부는 구제·대출 프로그램으로 저·중소득층에게 소득보조금을 지급했고,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자를 구제했다. 이자율 삭감과 대출금의 만기도 연장했다. 우리가 대표적인 뉴딜 정책으로 알고 있는 댐, 고속도로 등 정부 주도형 SOC에는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이 투입됐다.
뉴딜은 나랏돈 경기 부양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회안전망도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의 단체협약과 조합 가입 자유, 최대노동시간, 최저임금, 실업급여 등이 도입됐으며, 제품의 가격과 판매 조건을 규제해 임금 인상과 재화 가격을 낮추는 시도도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뉴딜 중 재정확장 기조를 이어 받고 있다. 지출을 늘려 취약계층에 현금성 복지를 지원하고, 공공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정부 주도형 투자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대의 변화를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2020년과 1930년의 정부 지출 효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 지출은 늘리되, 과거와 같은 종류의 지출은 하지 말라는 얘기다. 또 뉴딜도 재정확장 부작용을 겪었다는 점도 강조한다. 당시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증세가 이뤄졌으며, 향후 재정 지출을 줄이자 1938년 곧바로 ‘제2 침체기’가 발생했다.
홍우형 한성대 교수는 “우리나라도 한창 개발이 이뤄진 1980~1990년대에는 정부 지출의 파급 효과가 컸는데, 지금은 재정 승수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며 “SOC는 더이상 투자할 곳이 없고, 현금성 복지도 수혜자가 소비를 하지 않으면 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정부 지출의 종류가 중요한데, 현재 상황에서는 제조업 위기를 돌파할 기간 산업 등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 대기업이라고 지원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 또한 “1930년대 뉴딜은 광범위한 정책이 추진돼 후유증도 많았다. 실패한 정책은 피하고 의미있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SOC와 공공 일자리 등 시장 개입 정책은 효과가 없다. 교육 등 인적 자본으로 이어지는 투자, 사회보장성 제도 정비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금성복지·SOC에서 ‘미래지향적’ 지출로 방향을 잡은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문제는 내용이다. 얼개가 드러난 한국판 뉴딜은 과거 정책의 답습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구자현 KDI 지식경제연구부장은 “과거에는 개발 수요가 많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이에 정부가 디지털·그린뉴딜, 고용안전망 강화로 방향을 잡은 것은 맞다”며 “상세 내용은 그동안 바꾸기 힘들었던 것들 위주로 추진해야 한다. 대공황 충격이 있어 경제 체질이 바뀐 것처럼 우리도 이 기회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어려운 주제를 꺼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판 뉴딜에는 ‘뉴딜’ 이름만 붙인 지방 요구 토목 산업 등이 대거 포함돼 있다”며 “차라리 추진이 어려웠던 규제 개혁, 국내 투자 환경 개선 등에 손을 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