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규제’ 논란에 게이머들 뿔났다

입력 2020-06-07 08:00
게임 플랫폼 스팀 실행 화면.

해외 게임을 손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플랫폼인 ‘스팀’이 최근 정부 규제의 대상으로 거론되며 게이머들의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국내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반드시 등급 분류에 대한 사전 심의를 받아야하는데, 이 플랫폼에는 그 과정이 생략돼있다. 현행법상 등급 분류에 대한 의무를 지켜야 하지만 해외 유명 게임을 편리하게 이용해왔던 게이머들은 “15년이 지난 플랫폼을 왜 이제야 규제하느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낡은 게임 등급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국민청원에 등장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과도한 게임 규제와 게임 탄압을 멈춰주세요’라는 글은 어느덧 4만7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게임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근래 스팀에서 유통하는 게임들에 대한 등급 분류를 권고했다. 심의 받지 않은 게임을 스팀을 통해 국내에 서비스 중인 30여 해외 게임사가 대상이다.

게임위는 단순 권고 수준이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스팀이 국내 서비스를 차단하는 ‘지역락’을 걸 수 있다는 걱정을 드러냈다. 최근 ‘에픽게임즈 스토어’ ‘EA 오리진’ 등 다수의 게임 플랫폼이 활발히 국내 진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처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1조(등급분류) 1항에 따르면 국내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반드시 게임위 또는 지정된 사업자로부터 등급 분류를 받게 되어있다. 정부가 주최하는 게임대회나 공익목적의 게임의 경우 예외조항이 마련되어 있지만 스팀에서 서비스하는 게임은 대부분이 사전 심의 대상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건물 모습. 게임위 제공

하지만 게임 이용자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업계 등에서는 이번 게임위의 권고 조치가 강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누더기가 된 국내 게임 등급 분류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은 “이미 2014년에 해외 게임 사업자들이 동일한 단속을 이유로 한국어를 삭제하고 한국 지역에서 서비스를 철회하는 사건이 있었다”면서 “현행 게임 심의 및 규제와 관련 행정은 게임 산업의 발전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게임위와 정부는 게임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소비자와 사업자를 만족시키는 규제 방식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팀이 ‘면제권’을 얻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국내 게임사에 대한 역차별을 지적하는 새 목소리도 등장했다. 해외 게임사는 국내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아 비교적 자유롭게 게임을 서비스하는 반면 국내 게임사가 출시하는 게임의 경우 현행법이 정하는 각종 허들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사전 등급 심사의 경우 최고 수백만원의 비용이 든다. 결국 게임 관련 규제들이 국내 게임사만 옭죄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는 근래 중국에서 선정적인 광고를 내세워 서비스하는 게임에 대한 문제의식과 맞물려 국내 게임사들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구글 플레이 기준 국내 모바일 앱 매출 상위 ‘TOP20’ 중 중국 게임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게임 등급 사전 심사 관련 현행법을 전면 뜯어 고쳐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이 이번 ‘스팀 사태’와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데다가 국내 스타트업 게임사의 창작 활동을 저해하고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게임 관련 심의 기구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게임사의 자율적 심의를 권장하고 있다.

앞서 문체부는 ‘게임산업진흥 종합계획’을 통해 게임등급분류 제도를 고치겠다고 공언했다. 게임의 경미한 수정에 대해서는 신고 의무를 면제하는 등 제도의 간소화도 추진 중에 있다. 게임위는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물에 한해 심의를 직접 진행하고 나머지 게임은 민간에 맡기는 추세이긴 하지만 당초 게임 등급 심의를 법으로 강제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SNS를 통해 “이번 논란의 원인이자 핵심은 현행 게임법 중 ‘등급분류’와 ‘자체등급분류사업자’부분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에 있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제도의 신청절차는 복잡하기 짝이 없고, 선정된 사업자들에 대한 관리 체계도 허술하다. 등급분류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적한 부분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이미 개정안 초안을 완성해 두었고, 입법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