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자 매기’ ‘범생이 청아’ 마약탐지견의 견생 2막 [개st하우스]

입력 2020-06-06 10:00

[개st하우스]는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담는 공간입니다. 즐겁고 감동적인 동물 이야기가 고플 때마다 찾아오세요.

“저기 오네요! 저 친구들이 오늘 만날 은퇴견들이에요.”

축구장 넓이의 훈련장 건너편에서 노란 리트리버들이 씰룩씰룩 걸어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바닥을 코로 킁킁거리면서 산책할 생각에 신난 듯 경쾌한 발걸음. 개들이 다가오면서 휴대폰 카메라에 잡힌 그 모습도 점점 커집니다.

10미터, 3미터, 1미터…그리고 으악! 캠코더로 다가와서 코로 킁킁, 바닥에 앉아 촬영하던 취재기자의 얼굴을 혓바닥으로 할짝할짝 핥아줍니다. 장난기 가득한 오늘의 주인공들은 마약탐지 은퇴견입니다.


“반갑다고 할짝할짝” 인천 영종도의 은퇴견, 청아와 매기

지난 5월의 마지막 금요일, 취재팀은 인천 영종도의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선 전·현직 마약탐지견 70여마리가 훈련과 보살핌을 받고 있는데요. 이날 취재진을 맞이한 것은 노란 리트리버 청아(8·중성화 암컷)와 매기(10·중성화 암컷)입니다.

이날 주인공 리트리버들. 점잖은 청아(왼쪽)와 흥을 주체 못하는 매기(오른쪽)

젊은 시절 공항·항구에서 화물 수천 개를 누비며 마약을 단속하던 탐지견들은 신체 나이 환갑인 7세 전후로 은퇴합니다. 수고한 탐지견들이 행복한 여생을 보내도록 센터 직원들은 최고의 입양자를 모집합니다.

첫 번째 은퇴견은 점잖은 리트리버 청아입니다. 청아의 파트너인 윤혁준 훈련사를 만났습니다.

청아 프로필. 다른 16마리 은퇴견의 프로필도 관세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세청 캡처


Q. 성격이 무척 점잖은 것 같아요
“청아는 모범적인 리트리버에요. 물거나 짖지 않고 성격은 여유롭죠. 기본적인 앉아, 엎드려 등은 당연히 잘하고요.”

Q. 좋아하는 놀이는?
“공 물어오기, 줄 잡아당기기(터그) 등등 놀이라면 전부 좋아해요. 반대로 식탐은 별로 없어요. 간식은 냄새 먼저 맡고 천천히 쪼개서 먹죠.”

카메라를 의식한 청아

Q. 건강은 괜찮나요?
“8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중년을 넘긴 나이거든요. 하지만 단 한 번도 병치레한 적이 없고, 뒷다리도 튼튼해요. 건강에 전혀 문제없어요.”

두 번째 은퇴견인 매기는 발랄합니다. 장난기 많고 자기표현이 풍부하죠. 4개월을 함께한 서유연 핸들러의 소개를 들어봤습니다.

3살배기만큼 발랄한 10살 리트리버 매기. 관세청 캡처

서유연 훈련사는 "매기는 이마부터 눈가까지 덮은 하얀 털이 너무 예쁘다"고 자랑했다.

Q. 매기한테 거의 끌려 나오시던데
“산책 초반에는 신나서 힘이 대단해요. 흥분이 가라앉으면 이후로는 동행산책을 잘해요.”

Q. 매기의 매력은?
“의사표현이 분명한 친구에요. 집에 돌아가는데 산책을 더 하고 싶으면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요. 훈련하다가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그냥 철퍼덕 눕거든요. 그런데 식탐이 강해서 되게 달래기 쉬운 친구예요. 먹이를 내밀면 바로 의욕을 되찾아요. 이렇게 착하고 단순하니까 하루 한 번 이상 산책시켜줄 수 있는 보호자를 만나면 잘 지낼 거예요.”

간식 앞에서 세상 얌전해지는 매기.

Q. 임무를 수행하던 개인데, 건강은 괜찮은지
“너무 건강해요. 탐지견들이 은퇴하는 이유는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뿐이에요. ”

공을 향해 달려드는 10살 매기 어르신. 2살이라고 해도 될 듯!

Q. 주로 진행하는 훈련은?
“미국반려견협회(AKC)의 반려견시민권교육(CGC) 과정을 진행해요. 일종의 사회화 교육으로 대인교육과 대견교육으로 구성돼요. 대인교육은 ‘앉아’ ‘기다려’ 등 기본적인 훈련이고요. 다른 개들을 만나는 예절인 대견교육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다른 탐지견들과 많이 어울리다보니 딱히 문제없어요.”

기본적인 대인훈련을 선보이는 매기. 은퇴견들은 입양에 앞서 앉아, 엎드려 등 기본 교육을 받았다.

탐지견은 마약 중독견? 은퇴견은 노령견?

임무견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날카로운 이빨, 매서운 공격성이 그려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탐지견의 삶은 동반자와 교감하면서 보상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이웃집 반려견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왕년의 운동선수들처럼 건강하고 쾌활하답니다.

은퇴견들은 6~7살 이후 이곳 훈련소로 돌아옵니다. 현역 시절에는 한 마리가 인천공항터미널의 1청사 화물벨트 23개를 혼자 다 돌아다닐 정도로 체력이 대단했습니다.

마약탐지견은 임무 수행 중. 연합뉴스

은퇴견 입양 프로젝트는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됐으며 그 과정에서 60여 마리 탐지견이 새로운 가족을 만났습니다. 이번 2020년 1차 입양대상은 총 16마리로, 은퇴견 7마리와 훈련 탈락견 9마리입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영종도 마약탐지견 훈련센터의 김동규 계장을 만났습니다.

장애물 넘기를 가뿐하게 선보이는 청아.

Q. 마약탐지견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아요
“굉장히 이상한 오해가 많았어요. 마약 탐지견들은 강제로 마약에 중독된 개들이라는 루머도 돌았거든요. 쟤들이 마약 중독된 상태라서 마약을 간절하게 찾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절대 아니죠. 마약 냄새를 알려주고 이걸 찾으면 보상을 주는 것뿐이에요.

Q. 탐지견들은 너무 희생을 강요받고 있지 않나요?
그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에요. 이건 일이 아니라 놀이에요. 반려견들이 보호자와 훈련하면서 간식을 먹듯이 마약탐지도 ‘어? 이런 냄새나는 걸 찾았더니 파트너가 간식을 주고 놀아주네?’ 이런 개념이죠. 능력을 극대화하려고 일부러 굶기거나 하는 일도 절대 없어요. 오히려 평상시에도 감각을 유지하려면 잘 먹고, 훈련용 마약을 숨기고 찾는 놀이를 매일 반복해야 해요.”

Q. 탐지견이 리트리버, 스파니엘 두 종류인 이유가 있나요?
“공항, 항만 등 대인접촉이 많은 곳에서 일하려면 외견상 위협적이면 안 돼요. 냄새 잘 맡는 능력으로는 군 수색견인 셰퍼드, 로트바일러 등도 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개의 외모, 종에 대한 편견이 강하죠. 리트리버나 스파니엘은 사람과 친하고 순하다는 이미지가 크잖아요. 덩치도 리트리버는 28kg, 스파니엘은 20kg 내외로 부담스럽지 않고요.”

마약 탐지 훈련을 받고 있는 스프링거 스파니엘의 모습. 이 견종은 15~20kg으로 28kg대인 래브라도 리트리버보다 체구가 작다.

Q. 중년을 넘긴 견공들인데 건강관리는?
“이곳 시설에 수의사분이 계셔서 건강검진은 물론이고 구충 및 예방접종도 수시로 받아요. 중성화, 예방접종, 동물등록 모두 완료됐어요. 모든 개들은 왼쪽 어깨 쪽에 인식용 마이크로칩을 부여받았죠. 어쨌든 개들의 건강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족찾기는 깐깐하게…3단계 입양심사

탐지견 입양심사는 꼼꼼하게 진행됩니다. 황세정 반장은 “모집 때마다 100건 이상으로 많이들 신청하신다”면서 “한 마리당 경쟁률이 많으면 10대1 정도 된다”고 하네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탐지견의 가족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요? 황 반장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Q. 입양 절차는?
“2개월간 총 3단계로 진행됩니다. 일단 1차로 6월1일~12일까지 입양서류신청을 받아서 점수를 매기죠. 제일 중요한 항목은 거주 형태입니다. 공동주택이냐, 단독주택이냐. 이것이 배점이 제일 큰데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이죠. 입양신청서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단독주택에 분양합니다. 짖는 소리라거나 배변습관, 등 야외에서는 문제되지 않던 부분들이 아파트, 상가 등으로 넘어가면 민원, 파양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 외 ▲개들을 돌볼 상주인원이 있나? ▲대형견을 돌본 경험은 ▲다치기 쉬운 영유아는 없는지 ▲담장 높이는 1.5m인가 ▲집에 견사는 있나 등을 종합 심사해서 점수가 높은 분들이 3배수로 서류 합격됩니다.

입양 신청서 일부. 신청자의 주거형태, 구성원 중 영유아 유무, 상주하며 개를 돌볼 구성원 유무가 특히 중요한 조건이라고 한다. 관세청 캡처

2차로는 서류합격자들의 자택을 전국 구석구석 방문하는 현장실사를 진행하죠. 서류에서 거짓말을 했다면 여기서 다 걸러냅니다. 마지막 3차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최종합격자들을 고르는데, 6월~8월까지 2개월 동안 진행돼요.”

Q. 입양후기 반응은?
“여기 와서 너무 잘 지낸다고 후기와 사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공놀이하고, 바다 놀러 갔다고 주기적으로 연락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따로 알려준 적도 없는데 배변 장소도 잘 구분하고요.”

훈련센터 사람들은 탐지견에게 한결같이 애정을 쏟았습니다. 혹여 봄 햇살이 따가울까봐 매기와 청아를 그늘로 데려가고, 촬영 중간중간 견공들이 목을 축이도록 시원한 물을 챙겨줬습니다. 훈련사들은 사랑하는 은퇴견들이 센터를 떠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더 큰 사랑을 찾아서 말이죠.

기자의 부탁에 앉아준 매기의 모습.

는 다음주 금요일인 12일 마감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관세청 홈페이지의 공고 코너로 접속, 혹은 를 클릭해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