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긴장의 주말’… 이재용, 변호인단과 심사준비 몰두

입력 2020-06-06 08:00

삼성물산·제일모직 위법 합병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초긴장 상태에서 영장실질심사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 공식 일정과 개인 일정을 모두 미룬 채 변호인단과 함께 8일 열릴 영장심사의 예상 문답과 대응 논리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1위 대기업 삼성전자는 2017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총수 구속 위기에 처하면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부회장은 5일에도 공식 일정 없이 변호인단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난 4일 삼성전자 내부는 ‘검찰 기소가 옳은지 국민이 판단해 달라고 수사심의위원회를 신청했는데 갑자기 영장이 청구됐다’며 억울해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구속 갈림길이 닥쳐온 만큼 충격을 추스르고 검찰에 맞설 법적 논리를 찾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변호인단은 구속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논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구속 사유인 도주 우려, 증거 인멸 등에 이 부회장은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면 관련 수사가 진행된 지난 1~2년간 이 부회장을 내버려두다가 이제야 구속한다는 것이니 말이 안 된다. 그런 점을 파고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이 부회장 측이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 절차를 신청했는데도 구속영장 청구를 강행해 검찰이 자체 개혁 의지를 무력화했다’는 주장도 꺼내 들 것이 확실시된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이 수사와 기소의 적절성을 따져보는 제도로, 검찰이 인권 침해 사례가 잇따르자 2017년 마련한 자체 개혁 방안이다. 재계 관계자는 “관련 수사가 오랜 기간 진행돼온 만큼 이 부회장 측이 영장심사에서 ‘정치 논리에 따른 수사’라는 기존 입장 외에 다른 논리를 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다만 심의위 신청을 무의미하게 만든 검찰의 ‘자기 부정’을 지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중국 시안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삼성 이재용 부회장

재계는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삼성의 투자 암흑기’라고 불리는 2017년이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당시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구속된 후 삼성그룹은 1년간 리더십 부재 속에 대규모 투자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1위를 거머쥐겠다”며 ‘반도체 2030 비전’을 선포한 후 최근까지 활발하게 경영 활동에 참여해 왔다. 총수 부재로 또다시 이런 중장기 투자 프로젝트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상황인 만큼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선 ‘오너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업계는 본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에 또 총수가 구속된다면 최근 삼성이 보여준 대규모 투자 노력 등도 빛이 바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