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새 스마트폰 ‘벨벳’(Velvet)은 상반기 가장 뜨거운 제품이다. 무슨 신제품이 나와도 미적지근한 반응 일색인 스마트폰 시장을 오랜만에 뜨겁게 달궜기 때문이다. 문제는 긍정적인 평가만큼 부정적인 것도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써봤다. 벨벳이 그렇게 욕먹을 제품인지.
결론부터 말하면 벨벳은 잘못이 없다. 지금까지 나온 LG전자 스마트폰 중에 가장 수려한 디자인을 갖췄고, 실제 사용해도 딱히 불만을 가질 만큼 성능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동안 LG전자 스마트폰은 뭔가 부족한 구석이 하나쯤 있었는데 벨벳은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가격 하나만 빼면. 근데 그게 커 보인다.
괜찮은 첫인상, 만족스러운 디자인
실제로 벨벳을 만져보기 전까지 기자도 대부분의 사람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보급형 제품을 ‘매스 프리미엄’이라고 하고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다는 편견이 앞섰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보급형인 스냅드래곤 765를 썼고, 카메라에 광학식손떨림방지(OIS) 기능도 빠졌다. LG전자가 그동안 차별화 포인트로 강조했던 쿼드DAC도 벨벳에는 없다. 이쯤 되면 면접도 보기 전에 이력서에서 탈락이다.
직접 만져보고 써보면 다르지 않겠냔 생각으로 벨벳을 만나보기로 했다. 첫인상은 긍정적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벨벳은 예뻤다. LG전자가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강조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당당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만큼은 된다는 생각이다. 디자인이 스마트폰 선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디자인이 좋은 제품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양쪽 측면을 곡면으로 처리한 건 다른 제품에서 경험한 기시감이 들긴 하지만 좋은 걸 벤치마킹하는 데 말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
성능도 딱히 불만을 가진 지점은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이라는 게 인터넷을 검색하고,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는 정도인데 웬만한 보급형으로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스펙은 상향평준화 돼 있다. 스마트폰 성능이 해마다 크게 발전하던 몇 년 전이라면 “사실상 성능 차이가 없다”고 주장해봐야 외면받겠지만, 요즘에는 보급형과 프리미엄 라인업 사이에 성능 차이는 일상적인 사용에선 체감하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벨벳이 이런저런 기능이 있다고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누구도 벨벳이 성능이 부족한 스마트폰이라고 보진 않을 것이다.
카메라는 아쉬운 면이 있다. ‘물방울 카메라’는 디자인 측면에선 호평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카메라 성능은 화질 측면에선 좀 부족해 보인다. 벨벳에는 OIS가 빠진 대신 화소 4개를 묶어 하나로 촬영하는 ‘쿼드비닝’ 기술이 들어갔다. 4800만 화소 메인 카메라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800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 화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LG전자가 강조하는 ‘타임랩스’, ‘ASMR 레코딩’ 등은 한두 번은 몰라도 꾸준히 사용되지는 않을 거 같다.
G9이 벨벳이 되기까지
벨벳은 원래 G9이었어야 하는 제품이다. 실제로 공식 모델명은 LM-G900N이다. G8은 G820N, G7은 G710N이었다. 벨벳이 원래 G시리즈 후속작으로 기획된 제품임이라는 얘기다.
스마트폰 개발은 보통 출시 1~2년 전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G8이 시장에 나왔을 때부터 벨벳은 G9으로 개발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고, 프리미엄에 걸맞은 성능을 준비했을 것이다. LG전자는 벨벳에 ‘벨벳 터치 디자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어느 회사도 보급형을 위해 별도의 디자인 정체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들어 LG전자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전략 변경을 선언한다. 기존 프리미엄 라인업 전개 방식으론 적자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보고 국내 시장에선 프리미엄을 접고 한 단계 아래인 ‘매스 프리미엄’을 주력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G9은 사라지고 벨벳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됐고, 비용 절감을 위해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프리미엄이면 갖춰야 할 스펙이 하나둘 빠졌다.
벨벳 가격은 왜 그렇게 정했을까
벨벳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쟁은 가격이다. LG의 입장과 소비자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LG전자는 벨벳 가격을 ‘100-20=80’이라고 책정했다. 프리미엄에서 몇 가지가 빠져 도출된 가격이라는 것이다. 반면 소비자들은 ‘50+30=80’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미엄이 아닌데 LG전자가 시장을 모르고 가격을 더 높게 잡았다는 것이다.
LG전자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LG전자는 경쟁사보다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어렵다. 수량이 적다 보니 AP, 카메라 모듈, 메모리 반도체 등 주요 부품을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없다. 또 2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마당에 적자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취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LG전자가 시장의 기대를 몰라서 가격을 저렇게 잡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G7의 출고가가 89만8700원, G8은 89만7600원이었다. 5G가 도입되면서 스마트폰 가격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해도 벨벳(89만9800원)이 두 전작에 비교해 가격이 내려간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시장은 냉정하다. 이 가격이면 벨벳에 비해 비교 우위에 있는 선택지가 있는데 굳이 벨벳을 1순위에 둘 이유가 없다.
결론적으로 벨벳은 제품 자체로는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많은 소비자가 벨벳을 경험해보면 LG전자 스마트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구매를 추천하는 건 망설여진다. 벨벳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 브랜드의 현재 위치가 그렇다. 누적된 실망은 소비자가 LG브랜드를 보고 선뜻 큰돈을 지불하기 망설이게 했다. 신뢰 회복은 단박에 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벨벳을 써보고 LG전자 스마트폰에 긍정적인 인식을 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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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