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안 되는 나의 삶…” 사라진 아버지 폰에 남은 글

입력 2020-06-05 15:43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작성하다 보내지 못한 메시지. 오른쪽은 피의자로 추정되는 이와의 대화 내용.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뒤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60대 남성의 실종이 10일째로 접어들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와 방송에 공개하며 “제발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아들 박을성씨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아버지가 실종된 지난달 26일부터 현재까지의 수사 상황을 전했다. 그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24시간 마트가 있는데 주간에는 아버지가 운영하시고 야간에는 어머니가 하신다. 어머니가 교대 시간에 저한테 전화하셔서 ‘가게 문이 잠겨있다. 2층에서 열쇠가 발견됐다’고 하시더라”며 “처음에 어머니가 ‘너희 아버지 약주라도 한잔하시러 갔나보다’라고 하셔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아버지 핸드폰이 가게에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거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발견된 아버지의 휴대전화에는 작성 중이던 문자메시지가 전송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다. 거기에는 “할 말이 없음.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금융사기 사기꾼들 신고해서 찾을 수… 카메라에 핸드폰에 옆에 도움이 안 되는. 나의 삶 이만 정리하려고”라는 글이 적혀있다. 박씨의 아버지는 의미심장한 내용의 메시지를 남긴 채 사라졌다.

박씨는 “그 문자를 보고 나서 아버지 카카오톡 같은 걸 보게 됐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전화번호들은 은행 이름으로 돼 있는 사람들이었다”며 “확인해보니 ‘신분증과 주소 준비 다 됐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게 있더라”고 떠올렸다. 박씨가 공개한 캡처 사진에는 아버지가 ‘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의 누군가와 대화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어 “날짜를 확인해보니 5월 20일부터 그 사람들과 연락하기 시작했더라”며 “가게 재정 상태가 힘들어져 대출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정부의 코로나19 지원금을 사칭해 접근한 무리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을 많이 대출받을 수 있게끔 아버지 통장에 미리 많은 액수를 넣어주고 대출 후 빼겠다는 식으로 접근한 것 같더라. 아버지가 사라지기 전 현금 인출된 게 4500만원정도 되더라”며 “인터넷에도 똑같은 사례로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씨 아버지에게 사기 피해를 입힌 보이스피싱범은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조직 지도부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박씨는 “(아버지가) 사상 터미널에 도착해 3번 출구로 나가는 장면까지는 잡혔는데 다른 소식은 아직 없다. 신용카드도 다 놓고 가셔서 흔적이 없다”며 “다른 거는 다 잊어버리시고 어머니 생각해 전화를 한 통 주시던가 집으로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