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첫 학교협동조합이 탄생했다. 말, 원예, 농업 등 학생들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창출한 기술과 결과물을 조합원들에게 판매하고, 이윤을 장학금으로 되돌려받는 방식이다. 조합원들은 저렴한 가격에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고 학생들은 전공과 연계한 경제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소중한 경험을 얻는다.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는 3일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사회적협동조합’이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고 5일 밝혔다. 지난 2월 교육부로부터 학교협동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 4월 법인 등록과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서귀산과고는 일반교과와 전공교과 수업이 함께 진행되는 특성화고다. 생명산업과, 말산업과, 통신전자과, 인테리어디자인과가 운영되고 있다. 특허청 지정 ’발명·특허 특성화고’이자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말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이기도 하다. 서귀산과고 사회적협동조합은 이 같은 특수성을 살려 원예조경, 말산업, 디자인, 발명 등 4개 분과로 운영될 예정이다.
원예조경분과에서는 원예와 조경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학교 하우스 시설에서 재배한 작물을 우선 판매하기로 했다. 5630㎡에 이르는 학교 유리온실과 비닐하우스에서는 꽃과 한라봉, 블루베리, 딸기, 상추 등이 재배되고 있다.
말산업분과는 주민을 대상으로 승마를 가르치고 승마대회를 주관하게 된다.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넓은 학교 목장(35만4729㎡)과 실내외 마장(1만1072㎡)을 교육 장소로 활용한다.
디자인분과에서는 주민들이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형태의 현수막 등 출력물을 디자인해 판매한다. 발명분과는 다채로운 식재료로 개발한 빵과 커피 등 음료를 판매한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만든 음식을 별도 판매할 수 없어 주변 단체에 무상으로 기부해왔다.
산과고 측은 4개 분과의 기본 활동을 바탕으로 향후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굴해나갈 예정이다. 특히 학교와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지역 연계 아이템을 찾고 있다. 교직원과 학부모를 중심으로 구성된 조합원도 주민들까지 폭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제주도교육청은 그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살아있는 직업 체험을 위해 학교협동조합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왔다. 지난해에는 ‘제주도교육청 학교협동조합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안’이 제정돼 제주형 학교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가 한층 가시화됐다.
앞으로 서귀산과고 학교협동조합에서 발생하는 이윤은 학생 조합원들에게 전액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김형희 교감은 “조합원들은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구매하고 학생들은 전공과 연계한 경제활동에 직접 참여해보는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라며 “처음이라 어려움은 있지만 차츰 체계를 잡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학생들도 기대감을 표했다.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2학년 학 학생은 “우리가 직접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며 “좋은 물건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한편 2018년 제주교육청이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의뢰한 ‘특성화고 학교협동조합 운영 모델 및 수익구조 발굴 연구용역’에서는 서귀산과고가 학교 자체 재원인 말을 판매하거나 귀농귀촌인을 위한 농산물 재배 농장을 운영하는 방안, 한국뷰티고가 현재 봉사 형태로 진행하는 헤어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당시 연구진은 협동조합의 경우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참여 주체를 다양화하고 적극성을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도내 여러 특성화고가 학교 협동조합을 창립할 경우 여러 학교가 하나의 법인을 활용하는 연합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함으로써 교사들의 업무 부담과 행정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전국 76개교가 학교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