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프로게이머인 ‘스맵’ 송경호는 KT 롤스터에서 희로애락을 전부 겪었다. 그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이곳 유니폼을 입었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우승 트로피도 들어봤고, 지옥 같던 승강전도 치러봤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모두 경험했다.
지난해 큰 부침을 겪었던 송경호는 시즌이 끝난 뒤 새 소속팀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대신 솔로 랭크에 매진하며 권토중래를 다짐했다. 그리고 지난달 다시 KT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이곳에서 LCK와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노리겠다는 목표를 새로 만들었다.
국민일보는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소재의 KT 연습실에서 송경호를 만났다.
-반년 만에 다시 KT 유니폼을 입었다
“내게는 친정과도 같은 곳이다. 마음이 몹시 편안하다.”
-여러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을 텐데, 왜 KT 복귀를 선택했나
“우선 LCK 팀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2019년에 부진하지 않았나. 설령 LCK를 떠나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 뒤에 떠나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감사하게도 KT에서 먼저 연락을 해주셨다.
서머 시즌이 치러질 앞으로의 6개월은 내게 몹시 중요한 시기다. 그런 만큼 편안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KT의 팀원, 감독님, 사무국 직원까지 모두 저와 잘 아는 사이다. 이곳이라면 내가 가진 것 100%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스토브리그에 휴식을 선언한 이유는
“2019시즌이 끝난 뒤 그동안 프로게이머로서 고민해본 적 없던 것들을 고민해야 했다. ‘지금보다 실력을 향상할 수 있을까’같은 것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사실 스토브리그 때도 많은 팀에서 입단 제의를 해주셨지만, 어디로도 선뜻 갈 수가 없었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었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자신감을 끌어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휴식기를 보내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집에서 솔로 랭크만 했다. 그런 건 프로게이머 데뷔 이후로 처음이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지도 못했고, 곁에 동료가 없다 보니 멘탈 관리도 어려웠다. 재충전했다고 표현하기엔 힘든 점이 많았다.”
-방금 말했던 것처럼 지난해 전례 없는 부진을 겪었다
“2018년까진 소위 ‘슈퍼팀’으로 불렸던 팀원들과 함께했다. 2019년엔 팀이 저를 필두로 해 로스터를 재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나는 어떤 팀원과 함께해도 잘할 수 있을 거야’같은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경기력도, 성적도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곧 자신감도 떨어졌다. 개미지옥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여러 문제가 산적했고, 팀이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침 ‘유칼’ 손우현도 같이 KT로 복귀했다
“나는 2018년에 우현이와 함께하면서 좋은 기억이 많았다. 우현이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과 올해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 얘가 내 기억 속에선 잘했는데. 왜 이렇게 부진한 걸까’싶었다. 나는 아직 우현이를 신뢰하고 있다.
우현이가 KT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탑라이너 포지션에선 나와 ‘소환’ 김준영이 그렇듯, 미드라이너 포지션에서 ‘쿠로’ 이서행과 우현이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로 본다.”
-오랜만에 LCK를 시청자 관점에서 봤겠다
“평소엔 다른 팀 경기를 보는 걸 몹시 싫어했다. 팀과 내 실력 향상을 위해 얻을 수 있는 것들만 캐치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시청자가 돼서 보니 재밌더라. ‘저기서 왜 저렇게 하지’ ‘나였으면 더 잘했을 것 같은데’같은 생각도 해봤다. 시청자들의 비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본 팀이나 선수가 있었나
“특정 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전부 재미있게 봤다. 옛 동료가 속한 KT나 DRX, 샌드박스 게이밍을 상대적으로 응원하긴 했다. 그리고 탑라이너 포지션이 약점으로 지목되는 팀들 경기를 보면서 ‘서머 시즌에 내가 들어갈 수도 있으니 지금은 좀 못했으면 좋겠다’ ‘덜 잘했으면 좋겠다’같은 생각도 해봤다. 하하.”
-2020 MSC도 봤나. LPL이 LCK를 압도했다
“나도 LCK 팀들을 응원했기에 대회 결과가 아쉬웠다. LCK는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를 고민해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LCK에서만 활동해서 그런가, 아직도 LCK 운영법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메타에선 그 정답을 100% 달성하기가 어렵다. 변수가 나올 확률이 높고, 싸움이 잦아서 그렇다.”
-LPL이 LCK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나
“지금은 당연히 LPL이 더 잘한다. 대회 성적도 그렇고. 하지만 LCK가 다시 LPL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방금 말했다시피 LCK는 정답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으니까.”
-올 시즌 목표로 하는 바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2019년에 부진했던 만큼 자신감을 되찾고 싶다. 팀적으로는 당연히 LCK 우승을 목표로 하려 한다. 사실 입단을 결정했을 때는 팀 성적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팀 합류 후 함께 호흡을 맞춰보니 ‘잘하면 우승도 노려볼 만하겠는데’ 싶다. 롤드컵도 당연히 욕심이 난다.”
-올해 KT 선수단은 베테랑이 여럿 포진해있다
“베테랑 선수가 많은 만큼 신인들이 가진 패기나, 공격적 성향이 부족하다. 그런 부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가 우리에게 당면한 숙제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플레이가 안정적으로 변한다.”
-다른 베테랑 선수한테도 같은 얘기를 들었다. 가령 정글러 위치를 고심할 수밖에 없다든지
“그렇다. 예전엔 정글러 위치가 어디든 간에 앞에 킬각이 보이면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격적인 플레이가 줄어든다. 정글러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공격했을 때도 이득을 취할 확률이 있다. 그런데 그런 플레이를 안 하게 된다.
-아는 게 너무 많아서 독인 셈일까
“음…. 그것보다는 ‘팀 게임에 너무 많이 녹아들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베테랑들은 ‘팀을 위해’ 안정적으로 플레이하려는 성향을 갖게 된다. 사실 나는 선수의 실력이 그래서 조금씩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손가락이 굳거나, 반응속도가 느려지는 것보다는 그런 성향 변화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예전 같으면 CS 6개 먹을 걸 3개만 먹고 귀환하는 것처럼 바뀌는 건가
“그렇다. 6개 다 먹으면 죽을 확률이 50%일 때 그걸 포기하고 귀환하게 되는 거다.”
-올 시즌은 10.11패치로 시작한다. 요즘 메타는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정말로 모든 라인이 중요해졌다. 그렇지만 딱 한 군데를 꼽으라면 나는 아직도 바텀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래곤이 게임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쳐서 그렇다. 협곡의 전령도 중요하지만, 이 전령 싸움도 바텀이 강력한 팀이 유리하다. 먼저 합류할 수 있으니까.”
-거의 모든 메타를 겪어봤다. 요즘 탑라이너의 기본 소양 하나를 꼽자면
“싸움 타이밍을 잡아주는 것이다. 요즘은 싸움이 자주 발생하는 메타다. ‘순간이동’으로 합류하는 능력이라든지, 직접 걸어가서 빠르게 합류를 한다든지…. 싸움 각을 잘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엔 ‘이니시에이팅(교전유도)’을 먼저 했을 때 좋은 챔피언들이 티어도 높고.”
-현실적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은 언제까지로 계획하고 있나
“나는 매년 ‘1~2년 뒤까지’라고 말해왔다. 이번 6개월로 얻어낼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내년까지는 정말로 열심히 해보고 싶다. 군 입대시기를 고려한다면 아마도 내후년까지는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년까지 잘 마무리하고, 여유를 갖고서 입대하고 싶다.”
-은퇴 전까지 최종 목표로 삼은 것이 있다면
“당연히 롤드컵 우승이다. 그리고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것. 오래 선수 생활을 해오다 보니 새삼 팬들의 중요성을 느낀다. 팬들께서 만족할 수 있게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6개월간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