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천안문 희생자 추모 촛불 강행…차이잉원 “6·4를 잊지 말자”

입력 2020-06-04 17:46
천안문 사태 당시 탱크를 막아선 '탱크맨'.AP뉴시스

중국의 6·4 천안문 민주화 시위 31주년을 맞아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추모집회가 전면 불허됐지만, 홍콩 시민들은 추모의 촛불 시위를 포기하지 않았다.

차이잉원 총통은 천안문 사태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중국 정부를 겨냥해 6월 4일 달력을 내걸고 ‘사라진 날’이라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도 “중국 공산당이 잔인한 폭력으로 살아남았다”고 비난하는 등 대중국 공세를 이어갔다.

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이날 천안문 민주화 시위 31주년 추모 집회를 금지했으나 범민주 진영이 집회를 강행키로 하자 3000명 이상의 시위진압 경찰을 시내 곳곳에 배치했다.

경찰은 3000명 가운데 2000명은 정부 건물들이 있는 애드미럴티 지역과 중국 연락사무소 주변 등 홍콩섬에 집중 투입하고, 나머지 1000명은 몽콕 등 다른 지역에 배치했다. 두 곳의 핵심 지역에는 각각 물대포 1대씩도 동원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벌어진 이후 홍콩에서 매년 열렸던 추모집회가 불허된 것은 30년만에 처음이다.

추모 집회를 주최하는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는 집회 금지 조치에 불복해 미국, 유럽, 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동참하는 온라인 추모 집회를 개최하고, 4일 저녁 8시 홍콩 시내 곳곳에서 촛불을 켜는 운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온라인 집회의 주제는 ‘진실, 삶, 자유 그리고 저항’이다.

지련회는 시내 곳곳에 100개의 부스를 설치하고 10만 개의 촛불을 나눠주고,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저녁 8시 9분에는 일제히 1분 동안 묵념을 하기로 했다.

‘8인 초과 모임’ 금지를 피해 8명 이하로 모여 빅토리아 공원에서 촛불을 들고, 무리 간 1.5m 간격도 유지하기로 했다.
자오쯔양 전 중국 총서기.연합뉴스

지련회 리척얀 주석은 “지난 30년간 이어져 온 추모 집회를 코로나19를 핑계로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탄압”이라며 “홍콩인의 저항 의지가 이어지는 한 추모 집회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 당시 시위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이유로 실각한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묘소로 가는 구간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출입을 금지했다.

중국 공안은 천안문 광장에서 외국 기자들의 출입을 차단하고 일반 관람객들도 철저한 소지품 검사와 신체검사를 하는 등 삼엄한 통제가 이뤄졌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이날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서는 1분마다 60초가 흘러가지만, 중국에서는 1년에 364일밖에 없다”며 “이는 하루가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차이 총통은 천안문 사태 당일인 6월 4일을 가리키는 달력 사진을 올리며 “6·4를 잊지 말자”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이어 “과거 대만도 무수히 많은 날들을 겪고서도 역사에 드러나지 못했지만 우리는 이를 되찾았다”며 “세계의 모든 곳에서 ‘사라지는 날’들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글 마지막에 “자유로운 대만이 홍콩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해시태그도 달았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정부는 전날 성명을 내고 중국에 6·4 천안문 사태 재평가와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 국무부는 3일(현지시간) 천안문 사태 31주년 성명에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1989년 6월4일 탱크와 무기들로 민주주의와 인권, 부패 없는 사회를 요구하는 평화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다”고 비판했다.

국무부는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정보에 대한 억압적인 통제와 잔인한 폭력으로 살아남았다”며 “31년이 지났지만 천안문 사태 사망·실종자 규모는 여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큰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죽음에 대해 의무를 다하려는 천안문 어머니들과 뜻을 함께한다”며 “우리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인권과 기본적 자유, 인권을 보호하는 정부를 염원하는 중국인들과 함께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부장관은 왕단과 쑤샤오캉, 리헝청, 리란쥐 등 천안문 민주화시위 지도자들을 만난 사진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왕단은 이 사진에 “우리를 만나준 장관께 감사를 표한다. 중국의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싸움을 지지해줘 감사하다”고 댓글을 달았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