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본격화…日 “10개 이상 보복안 검토”

입력 2020-06-04 14:58 수정 2020-06-04 17:07

법원이 일제 강용징용 가해 기업의 국내 자산이 압류됐다는 결정문을 공시송달키로 결정했다. 일본은 맞대응을 시사하고 나서 전범 기업 자산 처리 문제를 두고 양국의 갈등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1일 피앤알(PNR)에 대한 압류명령 결정 등의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PNR은 포스코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합작한 회사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법원 결정에 따라 오는 8월 4일 송달의 효력이 발생한다.

8월 4일부터 법원이 “일본제철이 소유한 PNR 주식을 강제로 매각해 현금화하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채무자에게 송달된 ‘유효한 압류명령’이 채권 매각명령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 압류사건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측에서 제기한 것이다. 압류된 주식의 가치는 액면가 5000원 기준 9억7300여만원이다.

매각의 방식은 다양하다. 통상적으로 매각 대상이 주식인 경우 법원이 집행관에게 매각 명령을 하고, 집행관이 이를 팔아서 법원에 돈을 제출한다.

법원은 현재 PNR 주식의 매각 가격 산정을 위한 감정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주식 매각이 완료되면 2005년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이춘식(96)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15년여 만에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경정문 공시송달로 전범기업 자산 매각 절차가 한 걸음 진척됐지만, 앞으로도 해결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협조하지 않으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협조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연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한국 법원이 압류한 일본 기업 자산 강제 매각 절차가 진행되는 것에 관해 “일본 기업의 경제 활동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도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계속 의연하게 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압류 자산의 현금화(강제 매각을 의미)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하지 않으며 안되다는 점은 전날 일한 외무장관 전화 회담을 포함해 한국에 반복해 지적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선택지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강제 매각이 실행되는 경우 이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산케이 신문은 최근 “일본 정부는 한국측의 자산 압류, 수입 관세 인상 등을 비롯해 최소 10개 이상의 대응조치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어떤 조치를 발동할지는 아베 신조 총리가 문재인 정권의 대응, 일본 경제에의 영향 등을 끝까지 지켜본 뒤 결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측 자산 압류란 한국 기업의 일본 내 자산을 압류하는 방식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앞으로도 한국 측에 조기에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강하게 요구한다는 입장에 전혀 변화 없다”며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관한 사법 절차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견해를 되풀이했다.

배상 책임이 있는 일본제철(日本製鐵·닛폰세이테쓰, 옛 신일철주금)은 판결을 이행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제철은 “문제는 국가 간 정식 합의인 한일 청구권협정·경제협력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당사로서는 공시송달 대응을 포함해 계속 일본·한국 양국 정부의 외교 교섭 상황 등을 고려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NHK는 전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