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극에 속은 것” ‘강간범 역할남’ 이례적 무죄 이유

입력 2020-06-04 14:56 수정 2020-06-04 15:36
게티이미지뱅크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이른바 ‘강간 상황극’ 거짓말로 실제 성폭행이 이뤄지게 한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13년형을 선고했다. ‘강간범’ 역할을 한 남성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무죄 판결이 났다.

대전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용찬)는 4일 주거침입 강간죄 등 혐의를 받는 이모(29)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간 취업 제한 명령도 내렸다.

그러나 주거침입 강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오모(39)씨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씨의 경우 합의에 의한 ‘강간 상황’ 성관계로 인식했을 뿐 실제 성폭행이라고 인지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모든 증거를 종합할 때 오씨는 자신의 행위가 강간이라고 알았다거나 아니면 알고도 용인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씨에게 속은 나머지 강간법 역할로 성관계한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여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씨에 대해서는 “오씨를 강간 도구로 이용해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해자를 강간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교사하는 대담성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지난해 8월 랜덤 채팅 앱 프로필에 ‘35세 여성’이라는 거짓 정보를 설정한 뒤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관심을 보인 오씨는 이씨로부터 받은 원룸 주소를 찾았고, 그곳에 있던 무고한 여성을 성폭행했다.

이씨는 오씨가 피해자 집에 들어간 직후 현장을 찾아 범행 장면 일부를 훔쳐보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와 오씨 그리고 피해 여성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2일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고 인격을 존중하지 않은 만큼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씨에게 징역 15년을, 오씨에게 징역 7년을 각각 구형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