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집중 공세에도 불구하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및 시행을 위한 중국 정부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홍콩 보안법이 시행되기 전인데도 6·4 천안문 민주화시위 추모집회가 불허되고, 입법회(의회)에서는 보안법 관련 질의도 거부되는 등 사회 통제도 강화되는 분위기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홍콩인에게 영국 시민권 부여를 위한 이민법 개정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고, 미국은 조만간 ‘위구르 인권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등 서방의 대중국 공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3일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전날 중국 CCTV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의 홍콩보안법 의결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홍콩은 특별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전인대가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켰을 때 안심했다”면서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홍콩은 현안을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람 장관은 “홍콩보안법은 홍콩에 생존의 기회를 주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람 장관과 테레사 청 홍콩 법무장관, 존 리 보안장관, 크리스 탕 경무처장 등은 3일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지도부와 홍콩보안법 제정과 시행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달 28일 전인대에서 홍콩보안법 초안 통과 후 며칠 만에 람 장관 등을 베이징으로 부른 것은 중국 지도부가 홍콩보안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홍콩에서는 30년만에 처음으로 천안문 민주화시위 희생자 추모집회가 불허된 데 이어 홍콩 의회에서 홍콩 보안법 관련 질의가 금지되는 일이 발생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우치와이 주석은 이날 홍콩 입법회에서 홍콩보안법 관련 질의를 하겠다고 수일 전 앤드루 렁 입법회 의장에게 고지했다.
홍콩보안법이 홍콩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홍콩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가 질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렁 의장은 전날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국방, 외교 등은 중국 중앙정부의 소관이기 때문에 홍콩보안법은 홍콩 정부의 일이 아니다”며 우 주석의 질의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미리 고지된 입법회 의원의 질의 자체가 금지당한 것은 처음이다.
우 주석은 “홍콩 정부는 홍콩보안법에 의견을 제시하려는 것조차 말살하려고 한다”며 이런 행태야말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홍콩 경찰은 오는 4일 열릴 예정인 톈안먼 추모집회 불허를 결정했다. 경찰은 8명 이상 모이는 집회가 금지돼 있어 톈안먼 추모집회도 허가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홍콩에서는 천안문 사태 이듬해인 1990년부터 매년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렸다.
과거 홍콩을 할양받아 통치했던 영국과 코로나19 책임론 등으로 중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 미국 등 서방의 대중국 공세도 이어지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3일 SCMP 인터뷰에서 “홍콩보안법을 시행할 경우 홍콩의 자유와 체제의 자율성은 심하게 훼손될 것”이라며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강행하면 영국 이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가졌던 모든 홍콩인에 영국 시민권 부여를 포함한 권리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존슨 총리는 “이민법을 개정하면 홍콩인이 영국에서 일 할 기회가 확대되고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며 “홍콩에서 약 35만명이 BNO 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며, 추가로 250만명이 이를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정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홍콩보안법 여파로 탈출하는 홍콩인들을 수용하는 데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2일 밝혔다.
미국 하원은 ‘2020년 위구르 인권정책 법안’을 2일 백악관에 송부해 천안문 민주화 운동 31주년 기념 주간에 발효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은 지난달 14일 미 상원에 이어 27일 하원을 통과했으며 10일 이내에 대통령 서명 절차를 거쳐 발효된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미국은 중국 당국이 위구르족 공동체에 대해 인권탄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이 법안이 천안문 학살 사건 31주년을 맞은 주에 백악관에 송부된 것에 특히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위구르인권법안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위구르족 및 무슬림을 탄압하는데 책임이 있는 관리 등 관계자와 기관, 기업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일 오후 국무부 청사에서 왕단과 쑤샤오캉, 리헝청, 리란쥐 등 천안문 민주화시위 지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홍콩 경찰의 천안문 희생자 추모집회 불허 조치에 대해 전날 트위터에 “이는 홍콩인의 외침과 선택을 막아 그들이 중국 민중과 똑같게 만들었다. 이로써 소위 일국양제는 종말을 고했다”고 글을 올렸다.
중국은 홍콩보안법 제정 추진에 대한 영국의 비판과 홍콩인 이민 확대 정책 등에 대해 강력 성토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전인대가 홍콩의 국가안보 법률 제도와 법 집행 체제를 제정하는 것은 완전히 중국 내정에 속한다”며 “어떤 국가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은 이에 대해 함부로 평론하며 홍콩 사무와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며 “1997년 중국이 홍콩에 대한 주권을 회복한 뒤로는 영국의 모든 관련 권리와 의무는 종료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이 냉전 시대 식민통치 사고에서 벗어나 벼랑 끝에서 말 고삐를 잡아채기를 바란다”며 “홍콩이 이미 하나의 중국으로 반환됐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즉시 내정 간섭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