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지면서 촉발된 미국 전역의 항의 시위가 8일째 계속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군 동원 위협과 주요 도시에 내려진 야간 통행금지 조치에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오는 4일 플로이드가 숨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를 시작으로 9일까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린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인근 잔디밭과 링컨기념관 앞에선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정의도 평화도 없다” “침묵은 폭력”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두 손을 모은 채 침묵하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플로이드가 경찰 무릎에 목이 짓눌렸던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백명이 아스팔트와 잔디 위에 누웠고 그들의 얼굴은 땅을 향했으며 손은 상상의 수갑에 묶여 등 뒤로 고정됐다”며 “들린 것이라고는 헬리콥터가 쿵쿵거리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뿐이었다”고 전했다.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선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방문 행사를 위해 경찰과 주방위군이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워싱턴DC 인근 군 기지에는 현역 육군 병력 1600명이 배치돼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조너선 호프만 국방부 대변인은 “군 병력이 워싱턴DC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니며 시위 대응을 위한 민간 작전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워싱턴주 시애틀 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은 경찰의 후추 스프레이에 맞서 우산을 들었다. CNN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라고 전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선 약 1만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도 수천명이 참여한 시위가 열렸다.
이날도 미 전역에서 수백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1943년 이후 처음 통금을 시행한 뉴욕시에서는 오후 8시가 넘어서도 시위가 계속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뉴욕 경찰은 이날 시내에서 200명을 체포했다.
다만 시위 현장에서의 약탈, 방화 등 폭력 사태는 줄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CNN에 “월요일 밤 광범위한 약탈과 재산 피해 이후 화요일의 시위는 완전히 달라보였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맨해튼 거리를 행진했고 상점 주인과 주민들은 길가에 서서 이들을 응원했다.
프로이드의 고향인 텍사스주 휴스턴과 로스앤젤레스(LA)에서도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다. LA에선 시장 관저 밖에서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체포됐다. 이들은 바닥에 앉아 ‘평화 시위’ 등의 구호를 외쳤지만 통금 시간을 어겨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전역의 시위 열기는 플로이드 추모 행사 때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 추도식은 오는 8일 그의 고향인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교회에서 열린다. 9일 가족들이 참석하는 비공개 장례식에는 유명 인사들도 함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미국 전 부통령도 참석 의사를 밝혔다.
그에 앞서 6일에는 플로이드가 태어난 노스캐롤라이나주 클린턴에서, 4일에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추모 행사가 예정돼 있다. 플로이드의 유해는 휴스턴 메모리얼 가든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