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해산에 의료헬기 동원 논란… “적십자 마크 중립성 훼손”

입력 2020-06-03 17:08 수정 2020-06-03 17:35
지난 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흑인 사망 관련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가 조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고 있다. 이날 워싱턴DC 주방위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군 헬리콥터 2대를 투입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 주방위군이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특히 군용 헬기인 블랙호크(UH-60)만이 적십자 의료헬기인 라코타(UH-72)까지 시위대 해산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십자의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밤 워싱턴DC에서 진행된 시위에 주방위군 소속 블랙호크 공격헬기와 적십자 마크가 새겨진 라코타 의료헬기가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시위대 상공에서 저공비행을 하며 시위대에게 겁을 주는 방식으로 강제 해산을 유도했다. 헬기 저공비행은 비행 중 발생하는 하방압력을 이용해 군중에게 공포를 일으켜 강제로 해산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군사 전술이다.

헬기 비행 과정에서 바닥의 각종 잔해와 나뭇가지 등이 날려 시위대와 부딪힐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위대 측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지난 1일(현지시간) 군 헬기 한 대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 위쪽으로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라코타 헬기가 시위 진압에 동원된 것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경악하고 있다. 전직 육군 법무관인 제프리 콘 사우스텍사스대학 교수는 “군은 전투 의사가 없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적십자를 악용해선 안 된다”며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적십자 표식이 더 이상 중립적으로 남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WP는 적십자 헬기를 시위대 해산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국제 규범에 어긋날뿐더러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의료헬기를 이용한 작전이 군법상 위법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콘 교수는 “미 육군법은 ‘의료 대피’를 다루는 부분에서 의료헬기의 용도를 환자 대피와 의료인력·용품 보급, 수색 및 구조 등으로 엄격히 제한한다”고 말했다.

주방위군의 적십자 헬기 투입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군 수사당국은 어떤 경로로 시위 현장에 헬기가 동원됐는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 워싱턴DC 주방위군 대변인은 “윌리엄 워커 사령관이 저공비행 작전을 펼친 헬기와 관련해 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헬기의 이같은 기동이 주방위군 최고 사령부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전직 군 장성들은 군 헬기가 시위 진압에 나선 것에 대해서 비판했다. 마틴 뎀프시 전 합참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전쟁터가 아니며 미국 시민은 적이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토니 토마스 예비역 장군도 트위터에 “미국이 전쟁터라고? 남북전쟁같은 내전이나 적들의 침공이 아닌 다음에야 결코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라고 썼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