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OTT 웨이브에서 열리고 있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는 독특한 작품 하나가 눈에 띈다. 공연 애호가들에겐 익숙한 스테디셀러 제목인 ‘늙은 부부이야기’다. 욕쟁이 할머니 이점순과 할아버지 박동만의 황혼 로맨스를 그린 이 극은 여느 예술영화의 도입부 같은 느낌으로 시작해, 4분쯤 지나 연극무대를 촬영한 콘텐츠로 변신한다. 연극과 영화가 기묘하게 어우러진, ‘공연영화’인 셈이다.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는 예술의전당 지역공헌 공연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통해 제작된 작품이다. 배우 김명곤 차유경 주연으로 지난해 9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올렸던 공연을 영화 버전으로 다듬은 출품작은 박동만이 점순의 집에 들어가는 장면을 기점으로 무대 실황으로 전환된다. 일반 온라인 공연 콘텐츠처럼 풀샷으로만 무대를 촬영하지 않고, 클로즈업 등 입체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영화 시퀀스와의 이질감을 없앴다.
이 콘텐츠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 작품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으로 화두가 된 공연 영상화 사업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어서다. 해외에서는 영국 국립극장의 ‘NT 라이브’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메트: 라이브 인 HD’ 등 공연 영상화 사업이 10여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국내에서는 2013년 출발한 ‘싹 온 스크린’을 제외하곤 체계적인 영상화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설사 영상화 작업이 이뤄지더라도 최근 영화관에서 개봉한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처럼 공연 실황을 담는 정도였다. 웨이브 내 ‘늙은 부부이야기’는 공연 실황에 영화 촬영 기법과 후반 작업을 덧대 풀어낸, 국내외적으로도 독특한 작품이다. 공연 실황을 집 근처 영화관 등에서 선보이는 ‘NT 라이브’나 ‘메트: 라이브 인 HD’도 무대를 다이내믹하게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영화는 2015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영상화 사업을 담당한 신태연(32) 제작PD가 감독했다. 지난해 10월 첫 무대 촬영을 시작해 지난 4월 영화 인트로 촬영을 하고 후반 작업까지 마치는 데 약 7개월이 걸렸다. 신 PD는 3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공연 영상화 사업이 화제인 상황에서 공연예술을 확장해보기 위한 시도”라며 “이번 실험을 통해 관객과의 외연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품 장르는 ‘스테이지 무비’(가칭)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상은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무관중으로 무대를 촬영한 영상과 영화를 위한 촬영본으로 나뉜다. 전자는 ‘싹 온 스크린’ 사업의 하나로 지역 문예회관이나 학교 등에 무료로 배포된다. 두 버전을 합쳐 총제작비는 ‘싹 온 스크린’ 편당 평균 제작비와 비슷한 수준인 약 1억 정도가 들었다. 양질의 영상을 위해 카메라와 음향 장비 등에 아낌없이 비용을 투자한 결과다. 영화에는 음악 감독을 새로 선임해 작곡·연주한 삽입곡도 추가됐다.
공연 영상화 사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유료화’다. 창작자에게 이윤이 남지 않는 공연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늙은 부부이야기’는 국내에서는 쉽사리 시도되지 못했던 공연 영상 유료화에 대한 실험적 의미도 있다. 관객이 웨이브를 통해 지불한 7000원이 기획사·원작자 등과 공유되는 구조여서다.
예술의전당은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이 끝나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등에서 약 3개월 동안 장기상영회를 개최할 계획도 구상 중이다. CGV 등 멀티플렉스와도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신 PD는 “방송국에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수익 모델을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작업이 활성화된다면 향후 공연을 제작할 때 아예 영화 작업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방식의 협업도 생겨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