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91개’ 사과밭 말라 죽었다 충북 농가 시름

입력 2020-06-03 10:44 수정 2020-06-03 11:39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충주의 한 과수원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충북도농업기술원 제공.

“코로나19 보다 과수화상병에 걸릴 까봐 잠도 못 자고 있어요.”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6만6000㎡(2만평)의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인근 지역에서 과수화상병이 침투했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A씨의 사과밭은 화상병이 대규모로 발생한 산척면에서도 차로 40분 정도 달려야 할 정도로 한참 떨어진 곳이지만 결코 안심할 수는 없다. 자고 일어나면 화상병 확진농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고 의심신고도 계속 늘면서 과수농가들의 한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이상 기온으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냉해 피해를 입은 데 이어 화상병까지 발병해 과수농가들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사과의 고장’인 충주에서 40년 동안 사과농사를 지어온 A씨는 3일 “과수화상병 예방을 위해서는 외부인을 통제하고 소독을 잘 하는 것 뿐”이라며 “사랑과 정성으로 애지중지 키운 사과가 화상병에 걸릴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에 서너 번씩 사과나무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며 “올해는 냉해가 심해 열매가 작고 수확량도 크게 줄어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화상병에 걸리면 애써 키운 사과나무를 뿌리째 뽑아 땅에 묻어야 한다. 현재까지 마땅한 치료약제가 개발되지 않아 살균제를 뿌리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뿌리를 포함 나무 전체를 매몰해야 해 ‘과수 구제역’으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충북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도내 화상병 확진 농가는 전날까지 충주 93곳, 제천 17곳, 음성 2곳 등 112곳으로 늘어났다. 피해 면적은 축구장(7140㎡) 91개 크기인 65㏊에 달한다.

현재 충주 64곳, 제천 10곳, 진천 1곳 등 75곳은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정밀 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 검사는 간이 진단에서 ‘양성’이 나온 농가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만큼 확진될 가능성이 크다. 과수화상병 피해 농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심 신고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충주 14곳과 제천 12곳이 추가 접수돼 누적 의심 신고는 258곳으로 늘어났다.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이 나온 충북 충주시의 한 과수원에서 매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충북도농업기술원 제공

충북도는 화상병이 발생한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뽑아 땅에 묻으라는 긴급방제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첫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충주 5곳과 제천 3곳 등 8곳(5.3㏊)의 매몰 작업만 완료했다.

방제비용(매몰비용) 산정 지침 변경에 반발한 과수 농가 농민들이 매몰 처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제비용 보상 기준이 1그루당 보상에서 실비 보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의 경우 1㏊ 방제 보상액은 5825만원이었으나 올해는 1120만원으로 감소했다. 지금까지 피해가 가장 큰 충주시 산척면의 과수농가들은 1일 대책위를 꾸리고 농촌진흥청에 “매몰에 따른 손실보상금을 지난해 수준으로 높여 지급하라”며 건의문을 제출했다.
과수화상병 증상.

과수화상병은 배, 사과 등에 생기는 금지 병해충에 의한 세균병이다. 감염될 경우 잎과 꽃, 가지, 줄기, 과일 등이 불에 탄 것처럼 붉은 갈색 또는 검은색으로 변하며 말라 죽는다. 농진청은 지난 1일 과수화상병 위기 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충북에서는 지난해 충주 76곳, 제천 62곳, 음성 7곳 등 과수원 145곳(88.9㏊)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다. 피해 보상금은 270억2000만원에 달한다.

충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