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은 인정하나 기억이 안 나”…오거돈 구속영장 기각

입력 2020-06-02 19:54 수정 2020-06-02 21:11

자신의 집무실에서 부하 여직원을 불러 강제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변호인들은 오 전 부산시장이 고령인 점과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을 적극 부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법 조현철 영장전담판사는 2일 오 전 시장의 구속영장을 이날 오후 7시40분쯤 기각했다고 밝혔다.

조 판사는 이날 오전 11시15분부터 30여 분간 오 전 시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다음 8시간가량 관련 내용을 검토한 뒤 이런 결정을 내렸다.

조 판사는 “범행장소 시간 내용 피해자와의 관계 등에 비추어 사안 중하지만, 불구속 수사 원칙과 증거가 모두 확보됐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또 “피의자가 범행 내용 인정해 증거인멸 염려가 없고 주거가 일정하고 가족관계, 연령 등에 비추어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 초 업무시간 중 자신의 집무실로 부하직원을 불러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오 전 시장은 ‘컴퓨터에 로그인이 안 된다’며 피해자를 자신의 집무실로 부른 것으로 드러났다.

오 전 시장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법무법인 지석, 상유 등 변호인 4인과 함께 출석해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확인하는 검찰 질문에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변호인은 피의자가 현재 자신한테 불리한 건 실제 안 했다고 믿는 ‘인지 부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고, 그런 이유로 성추행이 우발적이었음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 전 시장 측은 또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2건의 암 수술 진단서를 제출했고 72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재판부에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오 전 시장이 피해자를 집무실로 부른 이유와 일련의 행동, 말 등을 미뤄 범행이 계획적이었다고 반박하는 등 변호인 측과 공방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 전 시장은 영장실질심사 후 동래경찰서 유치장에 입감해 대기하다가 오후 2시30분쯤 혈압상승과 가슴 답답함을 호소해 잠시 인근 병원을 다녀왔지만,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 그는 영장기각 결정과 함께 경찰서를 벗어났다.

이로써 오 전 시장을 구속한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가려던 경찰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한 자체 회의를 통해 본건에 대한 향후 수사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라며 “오 전 시장을 상대로 다른 의혹에 대해 계속해서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