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존스 교회서 성경 들고 ‘포토타임’
길 내주려 백악관 인근 시위대에 최루탄
플로이드 동생 “형은 폭력 원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흑인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폭력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위해 주지사 요청 없이도 연방군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한 ‘폭동진압법’(Insurrection Act)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1807년 제정된 이 법은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때 발동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난 폭도가 평화적 시위를 집어삼키게 허용할 수 없다”며 “폭동과 약탈을 단속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연방 자산과 민간인, 군대를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정부주의자, 방화범, 약탈자, 범죄자, 안티파 등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며 “나는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고 평화로운 시위대의 동맹”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전 주지사들과 화상회의를 갖고 “여러분이 제압하지 못한다면 한 무리의 얼간이로 보일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미국 내에서 폭동이나 반란이 발생했을 때 주지사는 대통령에게 연방군 투입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시위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방군 투입을 요청을 한 주지사는 아직 없다. 시위 현장에서 약탈, 방화 등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는 있지만 지역 경찰과 주방위군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 요청 없이도 연방군 투입을 결정할 수 있는 폭동진압법 발동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백악관 소식통이 NBC방송에 전했다. 백악관 대변인도 “폭동진압법 발효는 여러 방안 중 하나”라며 “발효 여부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논의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CNN은 “군부의 전례 없는 정치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폭력시위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지휘본부를 설치할 방침이다.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는 이날도 계속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백악관 맞은편 라파예트 공원에선 경찰과 주방위군이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섬광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7분 남짓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백악관을 걸어나와 세인트존스 교회까지 이동했는데, 미 언론들은 길을 트기 위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회 앞에서 성경을 들고 취재진 앞에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이에 흑인 최초로 미국 성공회 주교에 오른 마이클 커리 주교는 성명을 내 “트럼프 대통령은 교회 건물과 성경을 편파적 목적으로 이용했다”며 “그의 행동은 우리를 돕거나 치유하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교회 포토타임은 이날 오전 결정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벙커 대피’ 보도에 큰 불만을 나타내며 도대체 누가 이를 언론에 알렸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뉴욕 등 도시 곳곳에선 산발적으로 약탈 행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자제하는 분위기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플로이드가 숨진 버지니아주 미니애폴리스는 추모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플로이드가 숨을 거둔 곳에는 시민들이 놓아둔 꽃과 추모 메시지가 가득했다. 플로이드의 동생인 테런스 플로이드는 이곳에서 “형은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사람들이 점점 테런스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기면서 새로운 고요함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