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엄격한 독일식 ‘무대 위 거리두기’ 적용이 정답인가

입력 2020-06-02 18:12 수정 2020-06-02 21:04
서울시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친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콘서트 '#여러분덕분에'의 한 장면. 국내 오케스트라 가운데 최초로 무대 위 거리두기 기준을 적용해 공연을 선보였다. 서울시향 유튜브 캡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오는 5일(현지시간) 공연을 재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로는 사실상 처음 대면 공연에 나선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모은다.

빈필은 지난달 27일 라이브 공연 재개 방침을 밝히면서 6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빈필의 홈그라운드인 무지크페어라인의 황금홀(1744석)에서 열리는 5일 첫 콘서트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협연 겸 지휘를 맡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바렌보임은 7일까지 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한편 7~8일 베토벤 소나타 109~111번을 가지고 리사이틀을 연다.

객석에는 거리두기 기준이 적용된다. 관람객은 최대 100명으로 제한됐으며 관객은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인터미션 없이 진행된다. 첫날 공연의 경우 티켓 수량이 워낙 적은 탓에 단원 가족과 후원자들에게만 제공된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빈필은 또 14일 리카르도 무티 지휘로 슈베르트의 교향곡 4번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봄의 소리’,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마르게리타 폴카’를 선보인다. 이어 19~21일 프란츠 뵐저 뫼스트 빈오페라극장 음악감독 지휘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인테르메초’ 가운데 교향적 간주곡, 슈베르트의 교향곡 3번 등도 연주한다.

빈필의 공연 재개는 코로나19의 진정세에 맞춰 오스트리아 정부가 지난달 15일과 25일 그동안 중단됐던 문화예술 활동을 허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지침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지난달 29일부터 관객 100명 이하의 실내외 행사를 허용했으며, 7월 1일부터는 실내 250명 이하(야외 500명 이하), 8월 1일부터는 실내 500명 이하(야외 750명 이하)의 행사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황금홀을 비롯해 브람스홀(600석) 등 여러 개의 홀을 가진 무지크페어라인에서는 여러 개의 콘서트가 시간대별로 펼쳐지게 된다. 6월에만 무려 40개로 빈 심포니의 콘서트, 스타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리사이틀 등도 예정돼 있다. 빈필은 앞으로 완화되는 정부 지침에 발맞춰 공연 프로그램 및 좌석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이 1m이며 공연장 내에서도 적용된다. 다만 무대에서의 연주자간 거리는 1m를 기준으로 하되 자기 책임을 전제로 의무적이지는 않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연주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독일은 매우 엄격해서 무대 위나 객석에서 1.5~2m 유지를 기본으로 한다. 독일의 ‘무대 위 거리두기’ 규정에 따르면 관악 및 성악 연주자는 다른 연주자로부터 최소 3m 이상 떨어져야 한다. 빈필과 함께 오케스트라계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베를린필의 경우 지난 5월부터 관객 없이 소규모의 콘서트를 온라인 생중계하고 있지만 대면 공연은 9~10월쯤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향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친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콘서트 '#여러분덕분에'의 한 장면. 국내 최초로 무대 위 거리두기 기준을 적용해 공연을 선보였다. 서울시향 유튜브 캡처

오스트리아 클래식계가 조심스레 기지개를 켜는 것과 달리 한국 클래식계는 오히려 위축된 모습이다. 최근 물류센터발 집단감염으로 공공극장이 다시 문을 닫은 데다 서울시향이 지난 29일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한 콘서트를 선보이면서 여러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 거리두기’를 따를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의 지휘로 선보인 서울시향 공연은 엄격한 독일식 기준을 대입해 연주자 간 최소 1.5m의 거리두기가 이뤄졌다. 단원도 50명 이하로 참여했으며 벤스케 음악감독은 공연 내내 마스크를 꼈다. 모든 단원이 보면대를 각자 봤으며 관악기 주자들 앞에는 투명 방음판이 설치됐다. 프로그램 역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등 대편성 관현악곡 대신 모차르트의 교향곡 39번 등 소편성 곡으로 교체됐다.

서울시향이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한 것은 바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3일 정기공연을 대신해 무관중 온라인 공연을 선보이면서 ‘무대 위 거리두기’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프로그램도 교체돼 최대 편성곡은 55명이 오르는 시벨리우스 ‘핀란디아’이며, 연주자 간 1~1.5m 기준을 두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오스트리아보다 훨씬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좋은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보다 훨씬 엄격한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하는 것이 클래식계는 물론이고 공연계 전체를 위축시키는 악영향을 끼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