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음악 시장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 최근 여성 뮤지션들의 콜라보 음악이 미국 빌보드에서 최정상을 차지하는 등 여성 뮤지션들의 강세가 눈에 띈다.
여성 뮤지션이 내세운 이미지도 완전히 달라졌다. 가녀리고 예쁘기만 한 모습에서 탈피해 때로는 강인하고 발칙한 모습으로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를 휩쓴 빌리 아일리시와 리조가 대표적이다. 10대 천재 뮤지션 빌리 아일리시는 특유의 중성적 매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았고, 리조는 거대한 몸을 당당히 드러내며 여성미에 대한 기준을 전복시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여(女女) 콜라보는 미국 팝시장에 새로운 한 획을 긋고 있다. 솔로로 이미 톱스타 반열에 오른 여성 가수들이 손을 잡고 메가 히트곡들을 쏟아내고 있다. 남성이 장악한 힙합 시장에 뛰어든 여성 래퍼의 활약도 부각되고 있다.
‘레인 온 미’…여성 뮤지션 콜라보 최초, 2주 연속 1위 달성
가장 최근 곡으로는 팝가수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협업한 곡 ‘레인 온 미(Rain on me)’를 꼽을 수 있다. 이 곡은 1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 최신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레인 온 미’는 지난달 21일 싱글 형태로 공개된 곡으로 레이디 가가가 4년여 만에 내놓는 정규앨범 ‘크로마티카(Chromatica)’의 타이틀 곡 중 하나다. 정규앨범 ‘크로마티카’는 지난달 29일 발매됐다. 정규 앨범 발매에 앞서 ‘레인 온 미’가 먼저 공개된 것이다.
이 곡의 피처링은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맡았다. 전 세계 음악 팬들은 최정상급 팝스타들인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손을 잡는다는 소식에 곡이 발매되기 전부터 이목을 집중했다.
집중된 관심만큼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빌보드는 “‘레인 온 미’가 여성 뮤지션 간의 협업곡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여성의 지배가 계속된다”고 표현했다.
앞서 레이디 가가는 애플뮤직 라디오DJ 제인 로우와 인터뷰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와의 우정을 자랑한 바 있다. 그는 “19살 때 성폭행 트라우마로 스스로 자해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면서 “아리아나 그란데도 맨체스터 콘서트 중 일어났던 폭탄 테러 사건과 전 남자친구의 죽음 때문에 힘들어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리아나 그란데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우정이 싹텄으며, 이후 콜라보 작업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와 함께 작업하면서 상처가 많이 치유됐다”고 말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레인 온 미’의 뮤직비디오 장면 중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두 손을 맞잡고 날아오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 것도 둘 사이의 이런 우정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된다.
빌보드 “또다시 여성이 지배하다”…여성 래퍼 조합도 빌보드 1위 달성
‘레인 온 미’는 빌보드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여성 뮤지션 협업곡이라는 점에서도 기억할 만하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팝가수 비욘세와 래퍼 메건 더 스탤리언의 협업곡인 ‘새비지(Savage)’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위에 올랐다. ‘새비지’는 메건 더 스탤리언이 지난 3월 발매한 EP ‘슈가’(Sugar)에 수록된 힙합곡이다. 신인 여성 래퍼의 곡에 슈퍼스타 비욘세가 참여하면서 메가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빌보드는 이 기사에 ‘또다시 여성이 지배하다’라는 소제목을 달고 래퍼 도자 캣의 ‘세이 소(Say So)’가 이 차트 정상에 등극한 지 2주 만에 여성이 협업곡이 또다시 ‘핫 100’ 1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빌보드가 언급한 곡 ‘세이 소’는 지난달 12일 여성 래퍼가 참여한 협업곡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차트 ‘핫 100’ 1위에 올라 그 의미가 특별하다.
‘세이 소’는 인기 여성래퍼 도자 캣과 니키 미나즈가 협업한 곡이다. 이 곡은 “내가 안다면 허락할 텐데” “네 마음을 터놔, 솔직해져 봐” “넌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거야?” 등의 도발적이고 여성 주체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게 특징이다.
도자 캣은 빌보트 차트 1위에 등극하기 전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만약 1위를 한다면 가슴 한번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공약을 하고 1위에 오르자 인스타그램에 “내가 여러분을 속였다. 내 가슴을 보여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활약이 이어지자 영국 일간 가디언은 “힙합은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공간이었지만 마침내 상황이 변하고 있다”며 “지금 우리는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지원하는 성공적 여성 래퍼들이 다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새비지’를 부른 래퍼 메건 더 스탤리언의의 경우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랩을 한다”며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블랙핑크 X 레이디 가가도 정상 석권
대중음악계에 부는 여성 뮤지션 돌풍은 국경도 뛰어넘었다. 걸그룹 블랭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협업 곡 ‘사우어 캔디(Sour Candy)’는 각종 글로벌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8시(한국시간) 발표된 ‘사우어 캔디’는 발매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이튠즈 전 세계 51개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우어 캔디’는 여성이 강인한 카리스마와 다정한 면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댄스팝 장르다.
레이디 가가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블랙핑크 멤버들처럼 강인한 여성상을 좋아하는데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블랙핑크의 다섯 번째 멤버가 되어서 자랑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 ‘레이디 가가와 블랙핑크의 사우어 캔디가 스포티파이와 유튜브 내 기록을 깨뜨렸다’는 헤드라인 기사를 내 이들의 콜라보가 만든 성과를 다루기도 했다.
김유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