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일 한국에 달갑잖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미국은 정치와 경제, 사이버 안보에 이어 군사 분야에서도 한국이 반중(反中) 전선에 참여해줄 것을 요구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 대응이 핵심인 한·미동맹의 성격을 바꿔 중국 견제에 동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010년대 이후 한·미동맹이 군사동맹을 넘어 다방면의 전략적 이익까지 공유하는 가치동맹으로 확대되면서 한국이 의도치 않게 미·중 간 신(新)냉전 구도에 엮이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31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의 군사력 증강은 현실”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휘 하에 국방부와 군, 안보 기관이 미 국민을 보호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인도 호주 한국 일본 브라질 유럽 등 세계 동맹국과 좋은 파트너를 이룰 수 있다”며 “우리는 이들과 함께 미국식 자유에 바탕을 둔 서구 모델이 다음 세기에도 보장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 러시아 호주 인도 등 4개국을 초청하고 싶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4개국 중 러시아를 제외한 3개국이 폼페이오 장관 발언에 포함돼 있어 미국의 G10 또는 G11 구상의 연장선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아시아 구상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잠재적 파트너 국가를 호명했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1일 “그간 실체가 없다는 비판이 있었던 인도·태평양 전략을 이번 기회에 구체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해 참여국 명단을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고 그 일환으로 한국도 들어오라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미국에 군사적 도움을 줄 만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며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 구체적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대중(對中) 군사적 억제의 파트너로서 한국을 거론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법적 근간을 둔 한·미동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 대응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 반중 전선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한·미동맹 자체의 성격 변화를 예고하는 측면이 있다. 한·미동맹이 중국 견제에 동원될 수 있을지를 두고 별다른 국내외적 합의가 없는 상황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한·미동맹이 2010년대 전후로 외연을 지속적으로 넓혀온 게 도리어 미·중 갈등에 한국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한·미동맹은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경제, 사이버 안보, 원자력 협력, 핵 비확산 등 다방면으로 확장해왔다. 공교롭게도 후임 트럼프 행정부는 탈(脫)중국 공급망 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와 반(反)화웨이 동맹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중 전선을 구축해놓고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못지않게 중국과 여러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맺은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비상경제회의에서 미·중 갈등 상황을 우려한 듯 “더욱 심해지고 있는 자국 중심주의와 강대국 간 갈등도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